책의 첫 문장이다. 중세시대를 암흑기로 만든 흑사병은 쥐벼룩으로 전염되는 세균 때문이었다. 산업시대 이전에 창궐한 질병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위생적인 시설도 없었거니와 의학 기술도 덜 발전하여 치료제도 없었고 영양 결핍으로 면역력 또한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질병은 과잉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진단한 신자유시대의 질병은 우울증이다. 상품과 화폐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성공을 꿈꾼다. 이를 위해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Yes, we can!”). 그러나 누구든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과잉 긍정 문화는 외부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자아는 피곤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우울증을 낳는다고 저자는 썼다. 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자기가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드는 시대에 개인은 자신을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전락한다.
12년 전 출간된 ‘피로사회’의 첫 줄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금 우리 스스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게끔 만들고 있는 시대의 질병은 바로 ‘플라스틱 중독’이다. 석유 추출물로 가볍고, 값싸고, 만들기 쉬운 이 소재는 우리의 24시간을 지배한다. 플라스틱 없이 살아갈 수 없으니 중독이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과잉생산된 이 플라스틱은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강과 바다를 떠돌다 먹이처럼 물고기 내장에도 엉겨 붙고, 잘게 쪼개져 마침내 우리 식탁에까지 오른다. 이 요물, 플라스틱은 질병을 넘어 재난에 가깝다. 플라스틱 중독은 기후재난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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