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휘종(徽宗·1082∼1135)은 천재적 예술가라는 미명과 나라를 망하게 한 못난 황제라는 오명을 함께 가지고 있다. 1126년에 금나라는 송나라 수도 개봉을 함락시켰고, 휘종은 금나라에 잡혀갔으며, 도교(道敎)에 빠져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많은 이들은 휘종이 정치를 도외시하고 사적인 예술에 탐닉한 끝에 북송(北宋)을 허약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휘종의 많은 작품이 실은 궁중의 화원들이 그린 것이라 하니, 휘종이 정말 천재적인 화가였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휘종의 작품 중에는 휘종 개인의 취미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위를 심미적으로 확립하고자 한 것들이 적지 않다. 이제 살펴볼 ‘서학도(瑞鶴圖)’가 그 예다.
서학도는 국정을 팽개치고 예술적 즐거움에 탐닉한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치적인 그림이다. 당시에 작성된 그림 설명에 따르면, 휘종이 대성부(大晟府)라는 관청에 명하여 작곡한 대성락(大晟樂)이 연주되자, 그에 감응하여 학들이 몰려드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서학도는 일종의 기록화인 셈이다. 하지만 서학도는 실제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장르화에 가깝다. 예컨대 날아온 학은 하늘에 사는 도교의 신선들이 국가 지도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사신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실제로 서학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은 실제 순간을 묘사한 이미지라기보다는 영원 속에 박제된 그림처럼 보인다. 얼핏 보면 하얀 학이 훨훨 날고 있는 것 같지만 날고 있는 상태에서 정지된 모습이다. 서학도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날아다니는 학의 역동적 움직임보다는 궁궐과 더불어 이루는 대칭적이면서도 상서로운 이미지다. 요컨대 서학도는 좋은 정치에 깃드는 상서로운 기운을 포착하려는 정치적 장르화다.
그 점은 도쿄와 교토를 연결하는 옛길인 도카이도(東海道) 풍경을 묘사한 19세기 일본 판화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실권자였던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1846∼1866)는 3000명과 더불어 천황을 만나기 위해 교토로 상경했다. 쇼군이 직접 교토로 상경한 것은 229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 역사적인 여행을 소재로 한 판화가 많이 출간되었다. 판화는 대량 복제가 가능하다. 실로 도카이도 풍경을 묘사한 이 판화들은 당시에 큰 인기를 끌어 판을 거듭하였다. 그림 아래쪽은 수행원들과 민간인들의 모습이 채우고 있고, 저 멀리 나고야성이 보인다. 나고야성의 존재로 인해 이 그림은 마치 특정 시공을 그린 기록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날고 있는 학에 주목해 보자. 예외 없이 이 학도 상서로운 기운을 상징한다. 서학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치 지도자가 움직이고 있으며, 학 역시 실제 나는 것처럼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말 저 순간 학이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다.
아름다운 그림을 생산하는 것이 정치적 권위에 도움이 될까? 된다. 세금을 낭비해 가면서 어설픈 홍보 영상을 찍거나 조악한 거리 환경 미화를 하는 것은 역효과를 내겠지만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면 권위의 창출과 유지에 도움이 된다. 아름다움이 행사하는 힘은 실로 막강하지 않은가. 아름다움의 특징은 자신의 힘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보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납득하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의 힘이다. 진정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보라. 선물을 주기보다는 선물을 손에서 떨어뜨리게 되고, 물을 권하기보다는 물을 쏟게 되며, 웃기보다는 울게 될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권위의 실추를 반영한다. 말로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기 시작하면 그 권위는 이미 위태롭다.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방법은 꼭 논리적 설득이나 물질적 보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심미적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설득할 수 있다. 그러니 정치적 리더라면 얼굴을 깨끗이, 복장을 단정히, 행동거지를 품위 있게 하는 일을 게을리해서야 되겠는가. 연애 비결을 묻는 학생들에게도 늘 말하곤 한다. 잘 씻는 게 생각보다 중요해요. 일단 씻으세요.
그러나 현대 유권자들은 심신을 잘 씻지 않은 이들을 국회로 보내기도 한다. 사진작가 강홍구의 1997년 포토 콜라주 작품 ‘흉조 5’를 보라. 이것은 판화보다 더 대량 복제가 가능한 사진 작품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검은 새들이 모여들고 있고, 전면에는 박쥐 사진이 크게 프린트돼 있다. 이 새들은 선출된 국회의원들을 상징할지 모른다. 도록에서는 이 작품이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새(The Bird)’를 연상시킨다”고 설명한다. 내가 보기에는 서학도와 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뭔가 조짐을 그린다는 점, 국정의 전당을 장소로 삼는다는 점, 그곳에 모여든 새들을 그린다는 점,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적절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이미지가 그림과 판화를 거쳐 사진에 이르기까지 유통 영역을 확대해 왔듯이, 정치 권력의 소재도 황제에서 관료를 거쳐 국민 전체로 확대돼 왔다. 이것이 발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강홍구는 상서로운 기운이 아니라 불길한 기운을 나타내는 검은 새, 박쥐를 전면에 내세웠다. 마치 보통선거라는 민주적 제도를 도입했다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라는 듯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단순한 정치 관람객에 머물 수 없듯이, ‘흉조 5’에서도 관객은 그저 관람자의 위치에 머물 수 없다. 이것은 바로 당신에게 닥친 일이란 것처럼, 박쥐는 보는 이에게 덤벼들고 있다. 하얀 길조를 불러들일 것인가, 검은 흉조를 불러들일 것인가는 모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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