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영화를 상영해야 정상인 멀티플렉스 극장이 또다시 ‘모노(mono)플렉스’가 됐다. 요즘 영화관에 가면 주야장천 ‘범죄도시4’만 튼다. 다른 영화들은 오전에만 반짝 상영하는 탓에 사실상 조조영화가 됐고, 저녁 시간대 등은 거의 100%가 ‘범죄도시4’다. 이 영화의 상영점유율은 지난달 24일 개봉 뒤 80%를 넘었고, 이달 들어서도 70% 안팎이다. 전국에 스크린이 3000개쯤 되는데, 5일에만 2778개 상영관이 이 영화를 1만5002회 틀었다. 스크린을 도배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계에서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라는 성토가 나온다.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범죄도시4’의 상영관 독점이 어느 정도인지가 뚜렷이 드러난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2017년 영화 ‘군함도’의 상영점유율이 50%대 중반이었다.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2014년)의 점유율은 40%대였고, 최근 1000만 영화인 ‘파묘’도 50%대였다. ‘범죄도시4’의 스크린 독점은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극장으로선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항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관들은 막대한 적자를 봤다. 부채 비율이 치솟았고, 국내 3대 멀티플렉스 중 2곳이 한때 사실상 자본잠식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계열사의 출자 등으로 연명한 극장들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줄줄이 지방 상영관의 문을 닫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범죄도시4’는 ‘서울의 봄’(2023년), ‘파묘’에 이은 구세주 격이다. 특히 비성수기로 여겨지는 4, 5월의 흥행 성공은 가뭄의 단비와 같을 것이다.
▷‘범죄도시4’를 제외하고 당장 크게 눈에 띄는 영화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역으로 다양성 부족이라는 한국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가 극심해졌음을 드러낸다. 박스오피스 10위권 내 우리 영화는 이 영화와 파묘뿐이다. ‘1000만 아니면 쪽박’이라는 말이 현실화한 것이다.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이런 영화에서 제작진이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하기 쉽지 않다. 2021년 30%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68%까지 반등한 한국 영화 점유율이 불안한 이유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관객 300만∼400만 명을 목표로 하는 ‘중박 영화’나 독립영화도 관객을 만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나온다. ‘범죄도시4’를 보고 ‘마동석표 액션은 볼만하지만 되풀이되다 보니 슬슬 지루해진다’는 관객이 적지 않다. 이는 곧 한국 영화가 처한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프랑스처럼 특정 영화에 일정 비율 이상 스크린을 배정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논의해볼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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