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무역 책사’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재무장관 또는 최소 통상정책을 다시 맡을 게 확실시된다. 그가 작년에 출간한 ‘No trade is free’(공짜 무역은 없다)에는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의 형 윌버 라이트의 말이 소개돼 있다. “젊은 사람에게 내가 성공을 위한 조언을 건넨다면, 좋은 부모 만나 오하이오에서 인생을 시작하라고 하겠다.”
美 대선 앞두고 보호주의 가속화
오하이오주는 윌버와 라이트하이저의 고향이다. 지금은 쇠락한 ‘러스트벨트’의 대표주자 격이지만 라이트하이저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1950, 60년대만 해도 윌버의 말처럼 미국의 풍요와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라이트하이저는 “그러나 그 후로는 일자리와 함께 사람들도 떠나갔다”며 “내가 살던 마을은 이제 3분의 1이 빈곤층이고 대졸 학력자도 10%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고향마을 몰락의 주된 이유로 미국의 ‘잘못된 경제 정책’, 즉 자유무역을 지목한다. 외국 기업들의 무차별 공습이 미국 노동자 가정의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는, 우리도 이젠 익히 들어서 아는 논리다.
라이트하이저의 이런 생각은 자기 고향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몸소 보고 겪으며 형성됐다. 뼈마디에 새겨진 확고부동한 신념인 것이다. 그가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맡자마자 한 일도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걷어차고 한미 FTA 재협상을 주도한 것이었다. 동맹의 가치나 정통 경제이론이 어떻든 간에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미국에 불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한 치도 좌고우면이 없다. 그는 최근에도 “기술이 계속 바뀌는데 무역협정이 영원해야 한다는 것만큼 멍청한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미국이 한국 같은 무역 흑자국에 내미는 청구서는 생각보다 빨리 발송될 수 있다. 트럼프 캠프는 모든 국가에 관세율을 10%까지 올리는 ‘보편적 기본 관세’를 도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게 현실화하면 지금의 한미 FTA 협정문은 휴지 조각이 된다.
물론 트럼프의 승리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단계다. 그럼 조 바이든 후보는 좀 나을까. 그는 ‘주한미군 철수’ 같은 과격한 협박을 하진 않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오히려 더 치밀하게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견지한다. 미국이 근래에 와서 여야 당론이 일치하는 지점이 몇 개 있는데 그중 일부가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 그리고 자국 산업·일자리를 적극 보호하는 것이다. 이는 통상정책의 최전선인 USTR 대표에 대한 의회 표결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라이트하이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경우 양당의 초당적인 지지로 인준안이 통과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대중 고율 관세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반도체 보조금, 인플레이션감축법 같은 새로운 보호무역 카드를 동맹국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계속 꺼내 들고 있다. ‘말과 스타일이 거친 트럼프냐, 조용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바이든이냐’인데, 정말 고민이다. 우리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과연 누굴 찍어야 할지.
역대급 대미 흑자에 취할 때 아니다
작년 한국은 미국과의 교역에서 사상 최대(445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지난 30년간 우리 수출의 버팀목이었던 중국의 역할을 이제 미국이 대신해 주나 싶지만 그런 기대는 너무 순진하다. 미국과의 교역에서 재미를 볼수록 우리는 과다 흑자국으로 찍히고, 워싱턴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하나 분명한 것은 라이트하이저의 책 제목처럼 우리에게도 미국과의 공짜 무역이 더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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