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0일은 ‘여성 건강의 날’이다. 이는 2007년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여성의 건강 증진과 행복한 삶을 위해 지정한 것이다. 여성 건강은 최근 화두인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서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열린 ‘여성·아동 건강지원 대책 당정 협의회’에서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은 “여성 생애주기별 건강 증진은 여성뿐 아니라 가족 및 사회 건강과 직결돼 있고 초고령화시대 사회적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올 2월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 계획’에도 여성의 생애주기별 주요 질환 관리를 위한 지원이 포함됐다. 당시 정부는 유방암 등 사회적 요구가 많은 여성 중증질환 진료비 부담 경감을 위해 치료 효과가 우수한 약제 등에 건강보험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달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2000명 확대 및 4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의료 현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의정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검사, 수술 등 진료가 기약 없이 미뤄지는 환자들은 극심한 불안과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논의가 인력 확보와 의료체계 안정에 집중되다 보니 환자들의 치료제 접근성과 치료비 부담 완화 등에 대한 정책 추진이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치료제 접근성 관련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논의는 답보 상태다. 청원 중에는 여성 중증질환 지원에 대한 내용이 적지 않은데 개중에는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신약 ‘트로델비(사시투주맙 고비테칸)’에 대한 신속한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청원도 있다.
트로델비는 치료 경험이 있는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생존을 유의미하게 연장한 유일한 2차 이상 치료제다.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는 국내 환자가 적은 희귀난치질환인데도 많은 이들의 관심과 공감 속에 5만5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됐다. 하지만 이달 말 21대 국회가 만료되면 폐기될 수 있어 건강보험 적용을 손꼽아 기다리던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와 보호자들은 애가 타는 상황이다.
여성 환자들은 유방암 외에도 다양한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균 등 외부 침입자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면역 기능에 이상이 생겨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즘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건선, 1형 당뇨병, 아토피 피부염 등도 여성에게 많은 질환으로 꼽힌다.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다행히 최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염증 반응의 원인인 특정 사이토카인 또는 특정 단계의 면역세포만을 억제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표적치료제’가 개발됐다. 그런데 표적치료제로 치료하다 증상이 악화되거나, 부작용이 생기거나, 아예 효과가 없는 경우 다른 치료제로 바꿔야 한다. 류머티즘 관절염, 아토피 피부염, 궤양성 대장염 등 일부 자가면역질환에선 표적치료제를 바꾸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김성기 대한건선협회 회장은 “한 치료제가 모든 환자에게 계속 충분한 효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치료 방법이 필요하다”며 “다른 치료제를 쓰면 효과가 있을 확률이 높은데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더 나은 치료를 못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1형 당뇨병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19세 미만 1형 당뇨병 환자에게는 치료비의 10%만 부담하게 하는 등 지원이 강화됐지만 성인에 대한 혜택은 여전히 미비한 상태다.
여성 건강을 지키는 건 한국 사회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인 만큼 치료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의료 공백 사태와 관계없이 건강보험 지원 등이 신속히 추진돼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좌절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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