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치슨 라인’은 우리에겐 아픈 단어다. 1950년 1월 1일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선언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원인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 역으로 지목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는 최근 애치슨 라인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미국은 이제 중국을 견제하기도 힘들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다른 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없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서 인질 역할을 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대규모 병력을 증원하는 계획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콜비의 주장은 애치슨 라인과는 결이 다르다. 전쟁에 대처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전략적 주장이다. 중국이 북한을 이용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켜 미군의 전력을 소모하고, 대만 침공이나 더 적극적인 침략을 감행할 경우, 미국이 술수에 말려들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 주장엔 모순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중국도 체력을 소모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동북아, 태평양 정책은 한 가지 경우의 수만을 상정해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콜비의 주장은 새가 갑자기 늘었다고 올림픽 스타디움이나 공항을 이전하자는 얘기와 같다.
그러나 ‘대선용 주장’이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 향후 한 세대 정도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미국의 쇠퇴가 아니라 국제 질서, 무력 지도의 재편성이다. 미군이 빠진 자리에 지역별 집단안보 체제가 강화되어야 한다.
유럽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유럽연합(EU)이라는 기본 골격을 갖추고 있다. 반면 동북아엔 확실한 리더십이 없고, 국가 간 반목과 원한이 강하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특별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러나 반만년 역사 동안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역할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 결심, 가치관의 이전이 가능할까? 솔직히 말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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