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의대 증원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을 앞두고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근거자료의 상당수가 보도자료나 시민단체 성명서 등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이번 자료로 의대 증원의 정당성이 소명됐다고 하지만 의사단체는 정부의 자료가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없다며 반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법원에 낸 답변서에서 밝힌 대로 의대 증원과 배정은 보건 의료 행정을 책임진 정부의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다. 문제는 정책 결정을 뒷받침할 자료를 공개하지 않거나 자료의 존재 여부에 대해 말을 바꾸면서 정책의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데 있다.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관련 자료는 모두 55건이나 이 중 30건이 보도자료와 언론 기사, 의대 증원을 요구하는 성명서들이다. 이게 어떻게 과학적 근거가 되나.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정부 회의체에 참석한 위원들 대부분이 300∼1000명 증원을 제안한 것으로 나온다. 정부가 과학적 방법론을 썼다며 인용한 연구보고서 작성자들조차 2000명 증원엔 반대했다. 2000명이 어떻게 나온 숫자인지 석 달 넘도록 설명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원배정위원회 위원 명단과 회의록은 물론이고 위원이 몇 명인지조차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위원 명단에 대해 처음엔 “익명 처리를 하되 의대 교수인지 공무원인지 알 수 있게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회의 결과 요약본만 내고 말았다. 의대 증원은 학령인구 급감으로 경영 위기에 내몰린 대학에는 동아줄이 되는 특혜이고, 국립의대는 증원 규모에 따라 교육 및 수련 인프라 확충용 정부 예산이 달라진다. 첨예한 이해관계와 막대한 예산이 달린 결정을 누가 참석했는지도 모르는 회의에서 내렸다니 그 결과를 누가 신뢰하겠나.
법원의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혼란은 불가피하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의사들에게 면죄부만 주고 의대 증원도 당분간 힘들어지게 된다. 기각 결정이 나오면 전공의 복귀가 불발되면서 수련병원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하고 외국 의사를 들여와야 하며 의대 교육은 파행을 겪게 될 것이다. 눈앞의 의료대란을 수습하는 것과는 별개로 의대 증원 정책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누구의 책임인지 낱낱이 따져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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