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은 어딜까. 아마도 창업 10년 만에 데카콘을 넘어 곧 헥토콘 진입이 확실시되는 미국의 오픈AI를 떠올릴 것이다. 데카콘이란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 헥토콘은 1000억 달러가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말한다. 오픈AI는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하는 생성형 AI인 챗GPT4를 서비스하고 있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중 기술과 사업적 측면에서 단연 선두다. 대학에서도 챗GPT4가 연구 및 논문 작성에 쓰여 연구자들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주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해 세상을 바꿨듯 오픈AI는 인간의 삶과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이 데카콘을 키운 이가 샘 올트먼이다.》
작은 성공에 안주않는 ‘연쇄창업가’
창업자로서의 올트먼은 스타성이 있다. 우선, 그는 미디어에서 흔히 우상화되는 ‘드롭아웃(drop out)’ 창업자, 즉 대학을 자퇴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한 기업가다. 하버드대를 다니다 자퇴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게이츠, 페이스북(현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리드칼리지를 자퇴한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성공한 드롭아웃 최고경영자(CEO)의 드라마틱한 경험담은 늘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다. 그들의 천재성을 부각하는 일화는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 다만 특별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굳이 대학을 자퇴하면서까지 창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연구에 따르면 통계적으로 드롭아웃 CEO의 성공 확률은 고학력 CEO의 성공 확률보다 낮다.
올트먼은 또 2번 이상의 창업을 경험한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다. 19세에 지역 기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룹트’를 창업하고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벤처캐피털인 ‘하이드라진 캐피털’을 창업했다. 미국 최고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Y콤비네이터’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을 투자하고 키워내는 일도 했다. 오픈AI의 공동 창업자 겸 초기 이사회 멤버로서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CEO로서 직접 회사를 이끌고 있다.
올트먼은 한 번의 성공에서 멈추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더 많은 혁신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작은 성공에 안주하고 적당한 회사의 경영자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작은 성공을 바탕으로 더 큰 꿈을 꾸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모험을 시도하면서 혁신을 지속적으로 주도한 것이다.
올트먼의 연쇄 창업은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독특한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창업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연쇄 창업가가 창업 경험이 없는 초심자 창업가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는다고 한다. 실패에도 보상이 주어지는 셈이다. 물론 창업에 성공한 연쇄 창업가가 실패한 창업가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성공한 창업가들은 획득한 금전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더 큰 가치, 더 큰 혁신을 만들 기회를 얻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창업가들이 실패 이후에도 계속 도전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강점이다.
비전의 힘… 직원들 신뢰 받는 CEO
올트먼의 오픈AI CEO로서의 경험은 5년 남짓에 불과해 많은 연구가 돼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오픈AI 내에서 그가 직원들로부터 압도적인 신뢰를 받는 CEO라는 사실은 밝혀졌다. 직원들과 상호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다양한 방면으로 소통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이는 CEO가 갖는 ‘장악력(Control power)’에서 오는 힘의 논리를 넘어 기업의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서 오는 뿌리 깊은 신뢰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지난해 일어났다.
그는 2023년 11월 갑자기 이사회에 의해 오픈AI CEO에서 해고됐다. 이사회는 해고 사유로 ‘이사회 및 주요 주주들과 의사소통이 부족하고 책임감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AI의 안전성 및 영리성과 관련한 문제로 이사회 내부에서 다툼이 있었고, 일부 이사의 주도로 일방적 해고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그는 과거에도 이사회 멤버들과 종종 이견이 생겨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사회의 해고 결정은 임직원들의 극심한 반발로 이어졌다. 주요 연구원들은 자진 사퇴 선언을 했다. 오픈AI 주요 투자자인 MS의 사티아 나델라 CEO가 올트먼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직원들은 ‘오픈AI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OpenAI is nothing without its people)’라는 문구를 사내에서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어 임직원 770명 중 700명 이상이 서명한 탄원서가 올라왔다. 이들은 “올트먼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단체로 회사를 옮기겠다”며 이사회를 압박했다. 결국 이사회는 올트먼을 복귀시키게 된다. 직원들이 CEO에 대한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이사회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이후 CEO 해임을 주도했던 이사회 멤버들이 이사회를 떠나게 된다. 이 일은 직원들이 올트먼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그의 리더십이 회사가 방향성을 공유하며 나아가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공동 창업자일 뿐 최대 주주도 아니다. 최근까지 주식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즉, 대주주로서 가지는 권리로서 직원들의 지지를 받은 게 아니라 회사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리더십 스타일로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한국에 이같이 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CEO가 있을까. 기업이 전혀 새로운 미래 시장을 개척할 때 CEO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없다면, 과연 그 직원들은 함께 모험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연구에 따르면 CEO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가 없다면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며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구할 수 없다고 한다.
한국에도 연쇄창업가 많아지려면
미국의 성공적인 창업자들의 다수는 연쇄 창업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트위터의 잭 도시 등이 그렇다. 한국에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위메프의 대주주인 허민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국내 창업가는 성공한 기업에 눌러앉아 가족 승계만을 계획하든가 상장한 뒤 지분을 매각하는 ‘엑시트(exit)’에 성공하고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왜 미국에 비해서 연쇄 창업가가 많지 않을까.
첫째, 성숙된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없다. 미국은 창업가들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면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더라도 엑시트하고 큰돈을 벌 기회를 얻는다. 이 성공을 토대로 또 다른 꿈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한국에서도 활발한 M&A 시장이 생겨서 성공한 창업가들이 더 큰 모험을 할 기회를 얻었으면 한다. 특별한 기술 유출 문제만 없다면 외국자본이 우리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도 없다. M&A 시장이 또 다른 창업의 텃밭이 돼 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창업 실패를 바라보는 문화의 차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실패한 창업가를 초심자 창업가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실패 경험이 성공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투자 결정을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실패자로 낙인이 찍히면 다음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실패에 관대하지 못한 문화는 연쇄 창업가를 길러내지 못한다. 뛰어난 사람들이 창업을 겁내게 만든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되면 그들의 가치를 100%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모험적인 창업을 했다가 실패한 창업가를 존경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단순한 실패가 아닌 성공의 초석이라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올트먼 같은 혁신적인 창업가들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장이 펼쳐질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