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향기, 5월의 신부[서광원의 자연과 삶]〈89〉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4일 23시 06분


5월은 어린이와 어버이, 그리고 스승을 상징하는 달이다. 근데 예전엔 자주 듣던 말이 하나 더 있었다. 이제는 점점 듣기 힘들어지는 ‘5월의 신부’다. 사시사철 결혼을 할 수 있는 데다 결혼 자체가 줄어드는 세상이다 보니 사라지는 말이 되고 있지만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이 표현의 기원은 유럽이다. 유럽인들은 기본적으로 땀구멍이 커서 몸 냄새가 강할 수밖에 없었는데 목욕 문화나 시설이 요즘 같지 않다 보니 잘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씻는 게 대부분이었다. 귀족들조차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는 정도의 세수를 했으니 목욕은 ‘계절 행사’ 비슷한 수준이었다. 요즘 말로 지독한 체취가 ‘디폴트’였던 것인데, 가족이야 같이 부대끼고 사니 그렇다 쳐도 연애결혼도 없던 시절엔 처음 만나는 남녀들, 특히 결혼 당사자들에겐 고민거리일 수밖에. 귀족들은 비싼 향수로 냄새를 숨길 수 있었지만 서민들이야 어디 그럴 수 있는가. 그래서 이제 막 피어나는 꽃향기로 몸 냄새를 가리는 5월이 결혼 성수기였고, 그러다 보니 5월의 신부라는 표현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런 꽃향기가 중세 시대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상품인 향수가 되었고 시장 역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냄새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고 계급을 구분하는 풍조가 더 심해진 것도 이때다. 도시는 빠르게 커져 가는데 하수도 같은 위생 시설이 없다 보니 거리는 오물로 넘쳤고 악취가 진동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은 넓고 공기 좋은 곳에 사는 데다 향수로 치장할 수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악취 가득한 거리 주변에서, 밀집된 상태로, 그것도 목욕 시설조차 절대 부족한 생활을 하니 몸에 배는 냄새를 어쩔 수 없었다. 프랑스 작가 발자크가 ‘인간 희극’에서 파리 곳곳을 냄새로 구획 지은 게 이래서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이럴 정도는 아니지만 냄새는 여전히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후각은 24시간 항상 가동하고 인간의 뇌가 유독 후각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시각적 기억은 3개월이 지나면 50% 이하로 떨어지지만, 향기 기억은 12개월 후에도 무려 65%나 남아 있을 정도다. 사람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감각인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니치 향수’를 원하는 것도 아마 이래서일 것이다. 니치 향수란 화장품 브랜드에서 내놓은 ‘패션 향수’와 다르게, 전문 조향사가 특정한 사람의 취향을 위해 만든 프리미엄 향수인데, 한마디로 ‘나만의 향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나만의 향기 하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다. 혁명의 물결이 왕궁으로 몰려오자 앙투아네트는 시녀에게 대역을 시켰는데 그녀만 쓰는 향수 때문에 결국 잡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찾아보니 세상에, 앙투아네트 역시 5월의 신부였다! 당시 14세였던 그녀가 나중에 루이 16세가 되는 왕세손과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결혼한 날이 1770년 내일, 그러니까 5월 16일이었다.
#5월#향기#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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