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34개월 만에 또 폐지되는 아파트 사전청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4일 23시 18분


아파트 사전청약의 원조는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이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처음 도입했다. 통상 아파트 착공 즈음에 하는 청약보다 2, 3년 앞당겨 입주자를 모집하는 것으로, 당첨자는 본청약 때 먼저 계약할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사전예약 이후 본청약까지 평균 4년, 최장 8년이 걸리면서 보금자리주택 사전 당첨자 중 실제 입주한 사람은 40%에 그쳤다.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불안감을 덜어주겠다며 시행된 제도는 얼마 안 가 폐지됐다.

▷사실상 용도 폐기된 카드를 다시 꺼내든 건 문재인 정부다. 전방위 규제에도 부동산 과열이 계속되자 주택 공급 시그널을 보내 집값을 잡겠다며 2021년 이를 부활시켰다. 당시 정부는 “사전청약에서 본청약까지 기간을 2년으로 최소화하겠다”고 했고, 국토교통부 장관은 “영끌해서 집 사지 말고 분양받으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단기간에 주택 공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민심 달래기용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예상대로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21년 7월 이후 사전청약을 진행한 공공아파트 99개 단지 가운데 현재 본청약을 끝낸 곳은 13개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본청약 시기를 제대로 지킨 단지는 1개뿐이다. 토지 보상이나 기반시설 조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청약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탓에 대다수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미뤄지는 건 기본이고, 지구 조성 과정에서 문화재가 발굴되거나 법정보호종인 맹꽁이가 발견돼 본청약이 하염없이 늦춰진 곳도 있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본청약에 맞춰 계약금, 중도금 같은 자금 마련 계획을 세우고 전월세 계약도 해놨는데 이를 송두리째 바꿔야 할 처지다. 사업이 연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분양가 상승 부담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최근 건설 자재 값과 인건비 등이 대폭 오르면서 본청약이 1년 미뤄진 단지의 분양가는 사전청약 때보다 최대 1억 원 넘게 뛰었다고 한다. 민간 사전청약 아파트 중엔 공사비 급등으로 건설사가 사업을 아예 포기한 곳도 나왔다.

▷사업 지연 피해가 속출하자 국토부는 어제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10여 년 전의 실패를 답습하고 2년 10개월 만에 사전청약 제도가 또 폐지되는 것이다. 청약 시점만 앞당기는 것일 뿐 실질적인 공급 확대 효과는 없는 불완전한 제도를 재도입한 지난 정부의 잘못이 크지만, 공공분양 ‘뉴홈’에 사전청약을 활용하다가 뒤늦게 폐지한 현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무주택 실수요자들을 희망 고문하는 어설픈 대책을 재탕 삼탕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사전청약#아파트#반값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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