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전청약의 원조는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이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처음 도입했다. 통상 아파트 착공 즈음에 하는 청약보다 2, 3년 앞당겨 입주자를 모집하는 것으로, 당첨자는 본청약 때 먼저 계약할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사전예약 이후 본청약까지 평균 4년, 최장 8년이 걸리면서 보금자리주택 사전 당첨자 중 실제 입주한 사람은 40%에 그쳤다.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불안감을 덜어주겠다며 시행된 제도는 얼마 안 가 폐지됐다.
▷사실상 용도 폐기된 카드를 다시 꺼내든 건 문재인 정부다. 전방위 규제에도 부동산 과열이 계속되자 주택 공급 시그널을 보내 집값을 잡겠다며 2021년 이를 부활시켰다. 당시 정부는 “사전청약에서 본청약까지 기간을 2년으로 최소화하겠다”고 했고, 국토교통부 장관은 “영끌해서 집 사지 말고 분양받으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단기간에 주택 공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민심 달래기용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예상대로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21년 7월 이후 사전청약을 진행한 공공아파트 99개 단지 가운데 현재 본청약을 끝낸 곳은 13개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본청약 시기를 제대로 지킨 단지는 1개뿐이다. 토지 보상이나 기반시설 조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청약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탓에 대다수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미뤄지는 건 기본이고, 지구 조성 과정에서 문화재가 발굴되거나 법정보호종인 맹꽁이가 발견돼 본청약이 하염없이 늦춰진 곳도 있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본청약에 맞춰 계약금, 중도금 같은 자금 마련 계획을 세우고 전월세 계약도 해놨는데 이를 송두리째 바꿔야 할 처지다. 사업이 연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분양가 상승 부담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최근 건설 자재 값과 인건비 등이 대폭 오르면서 본청약이 1년 미뤄진 단지의 분양가는 사전청약 때보다 최대 1억 원 넘게 뛰었다고 한다. 민간 사전청약 아파트 중엔 공사비 급등으로 건설사가 사업을 아예 포기한 곳도 나왔다.
▷사업 지연 피해가 속출하자 국토부는 어제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10여 년 전의 실패를 답습하고 2년 10개월 만에 사전청약 제도가 또 폐지되는 것이다. 청약 시점만 앞당기는 것일 뿐 실질적인 공급 확대 효과는 없는 불완전한 제도를 재도입한 지난 정부의 잘못이 크지만, 공공분양 ‘뉴홈’에 사전청약을 활용하다가 뒤늦게 폐지한 현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무주택 실수요자들을 희망 고문하는 어설픈 대책을 재탕 삼탕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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