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미치는 영향은 미술계에서도 뜨거운 화두입니다. 이에 관해 최근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의 저자 마틴 푸크너 하버드대 교수의 대담을 들었는데요. ‘AI와 창의성’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푸크너 교수는 ‘문화’를 아래의 말로 정의했습니다.
“문화는 의미를 만드는 행위죠. 인류가 자연을 변화시키며 축적해온 과학, 기술적 지식이 ‘노하우(know-how)’라면, 문화는 ‘노와이(know-why)’입니다. 우리는 왜 지구에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왜 사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AI에 관한 담론도 흥미롭지만 문화에 관한 정의가 제겐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예술도 이미 100년 전부터 ‘노와이’의 영역으로 확장됐는데 종종 ‘노하우’만 있는 것으로 오해받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두 전시로 최전선의 현대미술이 제시한 ‘노와이’는 어떤 모습인지 소개합니다.
2시간 기다려 본 독일관 ‘문턱들’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직전 관계자와 미디어에만 공개되는 프리뷰 기간 내내 길게 줄이 늘어선 곳 중 하나는 독일관이었습니다. 2시간을 기다려 본 독일관 전시는 ‘문턱들(Thresholds)’이라는 제목의 그룹전이었는데요. 특히 안과 밖, 과거와 미래, 중심과 주변 등 상반되는 개념의 경계를 흐리려는 시도가 돋보였습니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건 야엘 바르타나와 에르산 몬타크의 두 작품이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바르타나의 작품을 만납니다. 작품들은 인류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는 설정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다음 전시장 가운데 지어진 작은 건물로 들어가면 몬타크의 설치, 퍼포먼스가 펼쳐집니다. 튀르키예에서 독일로 이주해 석면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삶을 그렸습니다.
바르타나의 작품은 우주를 다루니 미래 같고, 몬타크의 작품은 20세기 노동자 삶이니 과거 같지만 직접 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바르타나의 영상 작품은 수백 년 전 만들어진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 ‘카발라’를 토대로 합니다. 그런가 하면 몬타크의 작품은 살아있는 배우들의 퍼포먼스로 이뤄져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은 새로워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환상이 아닌지, 또 희망을 품고 타지로 이주했다가 덫에 걸린 노동자의 삶은 지금도 미래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게다가 ‘문턱들’ 전시는 독일관 밖 세토사섬으로도 이어집니다. 이렇게 아주 복잡한 구조로 경계를 흐리며 전시는 묻습니다. 왜 누군가는 과거를 향한 맹목적인 노스탤지어에 기대고, 또 다른 쪽은 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대립하는지. 그 가운데 문턱에 서서 양쪽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태도가 아닌지를 말입니다.
시적 언어 돋보인 드 브뤼케르
독일관이 큐레이터의 견고한 설계로 이 시대에 관한 ‘노와이’를 보여줬다면, 벨기에 작가 베를린드 드 브뤼케르의 개인전은 이런 ‘노와이’를 작가의 뛰어난 감각과 ‘노하우’가 뒷받침한 전시였습니다. ‘도피성(城) III(City of Refuge III)’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16세기에 지어진 베네치아의 성당 산 조르조 마조레가 배경이었습니다.
드 브뤼케르는 이 성당의 메인 공간인 네이브에 거대한 고철 덩어리 위에 선 천사(archangel) 조각을 설치했습니다. 천사가 서 있는 철판은 오랜 시간 비바람을 맞은 듯 녹슬었고, 조금만 균형이 무너지면 앞으로 넘어질 듯 기울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연출은 천사들이 동물의 가죽 같은 모포를 여러 겹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얼굴이 다 가려지도록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것처럼 고개를 숙인 천사들은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는데요. 죽은 자를 보호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야 할 천사들이 지독한 슬픔에 잠겨 울음을 터뜨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천사의 뒤로는 커다란 거울이 세워져, 슬프고 불안한 천사의 모습과 견고하고 화려한 성당을 대비시킵니다. 이런 연출을 통해 드 브뤼케르는 견고한 확신이 아닌 기울어진 불안이, 영원이 아니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일시성이 때로는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네이브를 떠나 수도원 갤러리로 향해 가장 깊은 방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시체처럼 누워 있는 인물 조각을 만납니다. 이 조각 역시 얼굴과 상반신은 보이지 않고, 동물의 가죽처럼 털이 난 모포를 뒤집어쓴 다리와 발만 보입니다. 자칫하면 두려움을 자아낼 수 있지만 세심한 재료 선택과 색채의 조절로 그 감각은 날 선 매혹으로 다가옵니다. 죽음은 가까이서 보면 두렵지만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듯 말이죠.
“육신은 한없이 연약하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드 브뤼케르.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문턱에 서 보자”고 제안한 독일관. 섣불리 확신을 구하기 전에 우선 불확실함 자체를 받아들이고 끌어안아 보자고, 현대미술 최전선의 작가와 큐레이터들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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