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13일 단행된 검찰 고위급 인사 발표 전에 “시기를 늦춰 달라”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11일 박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주요 수사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인사를 미루자는 의견을 냈지만 법무부가 강행했다는 것이다. 인사의 내용도 이 총장의 뜻과는 다르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인사를 조율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총장이 7초 동안 침묵하다가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이유다.
검찰청법에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돼 있다.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장관과 총장의 인사 논의를 2004년부터 법에 명문화한 것은 총장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라는 취지에서다. 총장이 인사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수사 지휘권자로서 영(令)이 서고, 그래야 검찰 수사가 외풍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인사는 협의하는 형식만 취했을 뿐 내용과 시기 모두 사실상 총장을 ‘패싱’한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 인사에서 총장과의 협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윤석열 대통령이다. 2020년 1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과 의논 없이 여권 핵심 인사들과 관련된 수사를 지휘하던 검찰 간부들을 지방으로 보내는 인사를 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청법의) 인사 협의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논의를 하라는 얘기”라며 반발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 비슷한 논란이 제기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 그렇다 보니 ‘김건희 여사 수사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당장 야당은 “검찰을 더 세게 틀어쥐고 김 여사 방탄에 나서겠다는 신호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제 국민이 주목하는 것은 검찰 인사 이후 김 여사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지 여부다. 이 총장은 “인사는 인사이고, 수사는 수사”라며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김 여사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1·4차장에 누가 임명되고 담당 부장검사들이 교체될지 등 변수가 많다. 어떤 상황에서든 원칙대로 수사를 이끄는 게 이 총장의 책무다. 김 여사 수사가 흐지부지된다면 인사로 검찰을 흔든 대통령, 그 앞에서 무기력해진 검찰 모두 무거운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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