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아버지, 스승, 물리학자[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6일 22시 51분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다. 마음이 바쁘다. 5월 8일 어버이날은 아버지 기일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몸담은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이자 고체물리학을 전공하는 실험물리학자였다. 학생 때 딱 한 과목, 아버지의 고체물리학 강의를 수강했다. 내가 유학을 떠날 때쯤에 아버지는 정년을 맞았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아버지는 196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전자복사기를 개발했다. 사업화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었다. 1970년에 전 세계에 오일쇼크가 닥쳤을 땐 대체에너지로 사용할 태양전지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은 에너지 효율이 20% 이상이지만, 당시엔 에너지 효율이 5%인 태양전지는 획기적인 연구였다. 이 역시 아버지는 사업화에는 관심이 없었고, 기술을 제자가 일하는 기업에 전해주었다. 1980년대엔 모바일 통신이 일상화되기 전에 통신장비에 쓰이는 전자 세라믹 소재를 처음으로 개발했다. 세라믹 부품이 미래산업의 쌀이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앞선 연구였다.

세라믹 통신 부품 쪽은 내가 이어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아버지가 세라믹 부품을 연구할 때는 그 가치를 몰랐다. 10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세라믹 통신 부품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작성한 논문과 보고서도 참조했다. 그 무렵 ‘좀 배워둘걸’ 하며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아버지는 이미 은퇴하고 섬에서 포도밭을 일구며 생활하고 계실 때였다.

집에서 마주치는 아버지는 소탈했다. 아버지는 책상이 아니라 소반을 놓고 공부를 했다. 어머니가 마련해 준 서재가 있었지만, 서재에 앉아 계신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안방에서 다들 시끄럽게 TV를 보고 있는 중에도 소반을 앞에 두고 양반다리를 한 채 홀로 집중해 뭔가를 했다. 여름이 되면 선선한 툇마루에 기대어 책을 보시곤 했다.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어둑어둑해진 곳에서 책을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곤 했다. 어린 나이에도 책을 보시는 그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양자물리학 역사를 들춰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이름을 남긴 예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닐스 보어와 그의 넷째 아들 오게 닐스 보어다.

닐스 보어는 양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해 원자의 구조와 원자 스펙트럼을 밝혀냈다. 이 연구를 시작으로 양자역학이 발전했다. 1922년에 닐스 보어는 이 같은 원자구조론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닐스 보어의 넷째 아들 오게 닐스 보어는 코펜하겐의 보어 연구소에서 아버지의 동료였던 볼프강 파울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물리학자들에게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함께한 연구원들은 후에 다들 노벨상을 받은 젊은 물리학자들이었다. 대학 3학년 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체포를 피해 고국 덴마크를 탈출할 때는 아버지의 조수 겸 비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1956년 코펜하겐대 교수가 됐고, 1975년에는 원자핵 내의 입자 운동에 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노벨 물리학상이라니, 정말 대단한 부자 물리학자들이다.

하루하루 녹음이 짙어가고 있다. 5월이 되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진다. 아들로서, 제자로서, 스승으로서, 또 두 딸의 부모로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나 생각해보게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성찰의 달이다.
#아버지#스승#물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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