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 ‘첫목회’가 그제 총선 반성문을 발표했다. 20명의 젊은 정치인들은 14일 밤부터 밤샘 토론을 진행한 끝에 “공정과 상식을 복원하는 게 살길”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첫목회는 매월 첫 번째 목요일에 모인다는 의미로 회원 대부분은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험지에 출마했고 3명을 제외하곤 모두 낙선했다.
이들은 “이번 총선을 통해 민심의 매서움을 목도했다”면서 이태원 참사에서 비친 공감 부재, ‘연판장 사태’에서 보인 분열, 강서 보궐선거의 아집, ‘입틀막’의 불통,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 임명에서 나타난 회피 등 5가지를 총선 패인으로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등에서 ‘국민과의 소통 부족’에 방점을 찍은 것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진단이었다.
다만 이들의 반성문엔 ‘주어’가 생략됐다. 지난 2년 동안 자신들이 지목한 일련의 사건들로 심판론이 거세게 일었음에도 “정부는 부응하지 못했고, 당은 무력했다”고만 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지목하지 않았다. 현안인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도 “공수처와 검찰 수사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여권의 기존 입장과 궤를 같이했다.
김 여사 관련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지휘부 교체 인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민심의 매서움’을 초래한 근본 원인, 변화에 소극적인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앞으로 어떻게 견인해 민심에 부응하도록 할지에 대해서는 어물쩍 넘어갔다. 용산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삼킨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소장파가 보수 재건을 위해 대통령의 상황 인식과 다른 목소리를 내겠다고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 과거 보수정당에는 소장개혁파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이 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게 함으로써 당의 체질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의 결기는 당 쇄신의 불씨가 되곤 했다. 첫목회가 ‘통렬한 반성’과 ‘용기 있는 행동’을 앞장서 다짐한 것도 선거 패배 한 달이 지나도록 뚜렷한 변화의 움직임이 없는 현 여권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정부 여당은 공정과 상식의 붕괴를 지적한 이들의 진단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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