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여름, 표류 중이던 구명정에서 식인 사건이 일어났다. 구명정에는 선장과 1등 항해사, 갑판원, 잡역부로 일하던 17세 소년 리처드 파커까지 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통조림 두 개를 챙겨 왔을 뿐, 식수조차 없었다. 표류 19일째, 선원들은 파커를 죽여 그의 피와 살로 연명했다. 24일 만에 구조돼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파커가 바닷물을 마셔 매우 아팠고 부양가족이 없는 고아였으며 그를 희생시키지 않았다면 4명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2명이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지만 6개월 만에 석방됐다.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실화다. 우리 사회의 화두인 연금문제 처리 방식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무엇보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해도 된다는 결정을 다수인 어른들이 내려버리는 ‘제론토크라시’ 논리가 엿보인다. 노인 인구가 늘면 1인 1표의 민주주의 사회는 그들의 뜻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노인이 청년을 잡아먹는다?
1988년 출범한 우리 연금제도는 당초 예상치 못한 장수화와 출산율 저하로 파탄을 예고하고 있다. 이 문제를 책임지고 고쳐야 할 어른들은 피해 당사자가 될 청소년들은 배제한 채 의견을 모았고, ‘조금 더 내고 많이 더 받는 안’을 채택해 버렸다. 이후로도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시간을 끌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은 늘어난다. 혹 ‘그래도 된다’는 미필적 고의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2004년 공적연금을 단일화하고 긴 시간에 걸쳐 야금야금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연금 납입 기간을 40년에서 5년 더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연금의 세대 간 형평성 논란에 ‘혐로(嫌老) 현상’이 지적되고, 약육강식 대신 ‘노육강식(老肉强食)’, 공해를 빗댄 ‘노해(老害)’ 등의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여론은 험악하다. 참고로 2004년 일본의 고령화율은 19%로 올해 말 20%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는 지금의 한국과 유사하다(출산율은 일본 1.3명, 한국 0.7명).
연금 대신 세대별 공제회 도입 주장도
2010년 일본의 젊은 경제학자 모타니 고스케는 저서 ‘디플레의 정체’(한국어판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에서 경제와 인구의 관계를 조명해 주목받았다. 개인적으로 흥미 깊었던 점은 그가 기존 연금제도는 존속이 어렵다며 대안으로 연령별 공제회를 제안한 것이다. 지금까지 낸 연금 적립금은 이자를 더해 각자에게 돌려주고, 이 돈으로 동년배끼리 공제회를 만들어 여기서 연금도 받고 상부상조하자는 게 핵심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금은 줄겠지만 사망자가 늘면서 수급자도 줄어들게 된다.
배경에는 일본의 고령세대가 청년세대보다 지금도, 앞으로도 부자라는 점이 깔려 있다. 이 제안은 고령세대가 청년들이 내는 돈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시하는 ‘신연금 분리안’과 닮은 대목이 있다. 다만 KDI 안은 ‘구연금’ 가입자에게 부족한 연금액을 세금으로 보충해 주려 한다.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차라리 안 내고 안 받고 싶다”며 피해의식을 보인다고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청년일수록 “그동안 낸 연금을 돌려받을 유일한 길은 해외 이민”이라며 ‘우리를 뜯어먹으려는 노인들로부터 통쾌하게 도망치는 법’을 연구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연 20만∼30만 명씩 태어난 세대가 100만 명 안팎으로 태어난 세대의 노후를 책임질 방법은 없다. 낸 돈이 적은데 많이 받는 마술 같은 셈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대 간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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