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호중 도주 열흘만에 음주 시인… 잡아떼려다 더 깊은 수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0일 23시 27분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던 유명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가 그제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그의 몸에서 알코올 부산물을 검출한 뒤에야 음주를 인정한 것이다. 서울 강남의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마주 서 있던 택시를 들이받고 도주한 지 열흘 만이다. 지난 주말 콘서트를 강행하면서 공연 취소로 감당해야 했을 위약금도 피했다. 김 씨는 소속사를 통해 뒤늦게 “크게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했지만 늑장 사과에 진심이 담겼는지 의문이다.

김 씨는 그동안 전 국민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 왔다. 음주운전 은폐엔 온갖 수법이 총동원됐다. 처음엔 매니저가 대신 김 씨의 옷을 입고 거짓으로 자수했다. 김 씨는 호텔로 갔다가 사고 발생 17시간이 지나 술이 깼을 만한 이튿날 오후에야 경찰서에 출석해 음주 측정을 했다. 사고에 앞서 여러 차례 유흥주점 등에서 술자리를 하고도 “술잔에 입은 댔지만 마시진 않았다”며 허위로 일관했다. ‘술은 나중에 마셨다’고 주장할 요량이었는지는 모르나 사고 후 캔맥주를 구매하기도 했다.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는 소속사 직원이 제거했다. 법과 공권력을 농락하는 처사다.

팬들도 끝까지 우롱하고 있다. 김 씨는 이틀에 걸쳐 경남 창원에서 대형 콘서트를 열면서 “모든 죄와 상처는 내가 받겠다” “모든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마치 자신이 억울한 피해자인 듯한 발언이다. 구속되지 않는다면 줄줄이 예정된 콘서트도 그대로 개최할 태세다. 그러나 진짜 피해자는 그동안 김씨를 아껴 왔던 팬들이다. 김 씨가 콘서트를 취소하지 않은 탓에, 표를 환불하면서 적잖은 수수료까지 물고 있는 실정이다.

김 씨가 사고 당시 차를 세우고 피해 차량과 운전자를 살폈다면 음주운전에 대한 응분의 처벌만 받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뺑소니 혐의는 당연하고 ‘운전자 바꿔치기’ 공모 여부에 대한 조사까지 받을 가능성이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발뺌하려 한 대가다. 최근 절도, 사기 등 범죄에서만이 아니라 직장 갑질과 학교폭력, 의료 분쟁, 식품 이물질 혼입, 층간소음 등에서까지 ‘먼저 사과하면 손해’ ‘진실을 감춰도 적당히 넘기기만 하면 된다’는 왜곡된 인식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잡아떼고 조작하려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김 씨 사건은 보여준다.
#트로트 가수#김호중#음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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