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국력이 성장하면 음식 산업은 자연스럽게 세계화된다. 14년 전, 네팔 카트만두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카레 위주의 식사가 지겨워진 일행이 한국에서 가져간 김을 꺼냈다. 호텔 종업원이 한참을 쳐다보더니 궁금해했다. 김을 설명했으나, 이해시키는 데에 실패하고, 조미김 두 봉지를 건넸다. 다음 날 우리 일행과 마주친 종업원이 맛있게 먹었다며 반가워했다. 여분의 김이 있었다면 더 주고 싶을 정도로 호들갑스레 고마움을 표현했다.
얼마 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머문 적이 있다. 호텔 인근에 먹거리가 마땅찮아서 마트에서 장을 봐서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식품 진열대의 김밥이 시선을 끌었다. 내용물은 오이, 맛살, 식초에 절인 미역 줄기, 아보카도, 머스터드소스였다. 장바구니에 담으려다가 멈칫했다. 한국 김밥의 절반도 안 되는 양인데 가격이 7달러였다. 냉동 김밥이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뉴스를 접했으나, 가격이 두 배가량 비싼 일반 김밥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김의 선풍적인 인기는 수출액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수산물 수출 부동의 1위였던 참치 실적을 2019년부터 김이 넘어섰다. 작년에는 7억9000만 달러를 수출해 세계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했다. 수산 식품 수출 역사상 단일 품목에서 처음으로 1조 원을 달성했다. 한국이 김을 수출하는 국가는 2010년 64개국에서 2023년 124개국으로 약 두 배로 증가했다. 세계인에게 김은 곧 한국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한국 문화의 높아진 위상 덕에 한국 식품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K팝, K드라마, K영화 열풍이 불면서 자연스레 한국 음식 저변이 확대됐다. 다양한 한국 음식 중에서 김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로 다양한 상품 개발을 꼽을 수가 있다. 조미김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간식류 출시와 더불어 김밥의 인기도 한몫했다. 또한 좋은 김 생산을 위한 지자체 간 선의의 경쟁은 김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 지리적 표시로 등록된 완도김, 장흥김, 신안김, 해남김, 광천김, 고흥김 등 많은 지자체가 김의 명산지임을 내세우며 김 품질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 김이 세계를 석권할 수 있었던 건 양식 어민의 신기술 적용 노력과 가공업체의 신제품 개발, 수출기업의 신규 시장 개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전성시대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다. 김 양식 기원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한국수산지’(1910년)에는 “전남 영암 출신인 김여익이 태인도에 살면서 떠내려온 조릿대에 김이 붙어 자라는 걸 보고 나뭇가지를 이용해 양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남도는 태인도의 김 시배지를 기념물로 지정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조선의 수산’(1924년)에서 소개하고 있다. “100년 전 완도군 조약도에 사는 김유몽이 해안을 거닐다가 밀려온 나무에 김이 자라는 걸 보고 나뭇가지를 꽂아 김 양식을 하게 된 것이 시초다”는 내용이 있다. 굴비나 도루묵 유래담처럼 허구성이 가미된 이야기인지 역사적 사실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김 양식이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908년 한국어업법 공포 후 1909년 시행될 당시 김이 유일한 양식업이었으니 가장 오래된 수산 양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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