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은 절대 안 해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예요.”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서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는 고객이 맡긴 열쇠로 그 집에 들어가 그 내밀한 삶을 훔쳐보는 취미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열쇠를 위임받고 집을 소개해 주는 일을 하고 있어 집주인이 없을 때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일의 목적을 벗어난 사적인 취미(?)는 ‘나쁜 짓’이다. 가택침입에 해당하는 범법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정태는 이것이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주인을 해코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물건 하나를 가져와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을 뿐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한 짓이 범법 행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이 인물은, 어느 날 문을 따고 들어간 자리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가 피를 철철 흘린 채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 후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마치 자신이 피해자나 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것은 거짓된 관종의 삶을 살아가는 인플루언서 한소라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내가 제일 불쌍해”다. 그는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신을 피해자라 착각하며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자신이 저지른 나쁜 짓에 무지하고 그래서 스스로 피해자라 착각하는 이들의 삶은 현재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보여준다. 잘못을 자각해야 변화가 생길 텐데, 그 자체에 무지하니 자신 또한 피해자라는 착각 속에 사회는 변화의 기회를 잃는다. 형을 살고 나와서도 자신의 나쁜 짓을 자각하지 못하는 구정태에게, “당신, 피해자 아니에요”라 일갈하는 형사의 말은 그래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