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이상훈]日, 전국에 빈집 900만채… 도쿄 주택가도 30년새 2배로 증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1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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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고령화로 빈집 급증
고급 주택가도 수십 년 방치된 빈집… 넝쿨 뒤덮여 너구리-쥐 나오는 흉가
상속받아도 비용 부담돼 그대로 방치… 도심 선호에 ‘애물단지’ 된 베드타운
14년 뒤엔 日 주택 10채 중 3채 빈집… 특별법으로 관리 독려해도 효과 미미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에 수십 년째 방치된 빈집. 유명 번화가 시부야와 가깝고 인근에 공원도 있는 고급 주거지임에도 오랫동안 흉물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에 수십 년째 방치된 빈집. 유명 번화가 시부야와 가깝고 인근에 공원도 있는 고급 주거지임에도 오랫동안 흉물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20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區)의 고마자와 마을. 벤츠, 렉서스 등 고급 승용차가 주차된 주택가 한쪽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집 여러 채가 보였다. 자물쇠로 굳게 잠긴 철문, 덩굴에 둘러싸인 외벽, 사람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게 자란 잡초…. 한눈에 봐도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었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고마자와 마을은 도쿄의 유명 번화가 시부야에서 차로 20여 분 걸리는 부촌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조성된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을 따라 아파트, 주택, 아기자기한 예쁜 가게 등이 많은 곳이다. 이런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곳곳에 공포영화에나 나올 듯한 빈집 10여 채가 있었다. 정체불명의 동물들까지 어슬렁거려 주요 언론에 ‘애니멀 하우스(동물의 집)’라는 별칭으로 여러 차례 소개된 적도 있다.

마을에서 만난 70대 여성 주민은 “20년도 더 된 빈집들”이라면서 “여름에는 고양이, 너구리, 쥐 등이 돌아다니고 모기도 많이 나와 문제”라며 손사래를 쳤다.

● 고령자 증가로 늘어나는 빈집


저출산 고령화가 장기화한 일본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빈집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수도 도쿄 한복판에도 빈집이 증가하고 있다. 고마자와의 빈집 마을 ‘애니멀 하우스’는 일본의 빈집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총무성이 지난달 말 공표한 주택·토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빈집은 900만 채에 달한다. 1993년 448만 채였는데 불과 3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전체 주택 대비 빈집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오사카 인근 와카야마현이다. 전체 주택의 20.3%가 빈집(임대, 매매 등으로 내놓은 물건 제외)이다.

도쿄는 이 수치가 2.6%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인구 1400만 명의 대도시 특성상 절대 수치가 높아 방치된 집이 21만5000채에 이른다. 도쿄 일대에서 방 1개에 부엌을 갖춘 1인 거주용 주택 월세가 10만 엔(약 90만 원)을 훌쩍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십만 채의 빈집이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일본 정부 조사에 따르면 빈집의 55%는 상속받은 집이다. 총무성 또한 “1인 가구 고령자 등이 사망하거나 요양시설에 입소한 뒤 상속이나 증여를 받을 사람이 없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상속받아도 철거 및 수선 비용이 부담돼 방치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고마자와의 ‘애니멀 하우스’ 또한 1966년 목조 단독주택으로 완공돼 등기부등본에 등록됐다. 애초 A 씨의 소유였다가 2000년 B 씨가 상속받았고, 이름이 비슷해 친척 관계로 추정되는 C 씨에게 일부 토지 소유권이 넘어갔다. 정확하지 않은 이유로 수십 년째 폐가로 방치돼 주민들의 원성이 높지만 소유주가 있는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세타가야구 측은 “소유자 측과 철거를 포함한 최선의 대책을 찾기 위해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뚜렷한 행정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수년 전에 집 전체를 흉측하게 덮었던 덩굴 일부를 제거한 게 전부다.

● 베이비붐 세대 퇴장에 베드타운 외면


최근 급증하는 일본 빈집의 증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1947∼1949년에 태어난 단카이(團塊) 세대의 퇴장과 연관이 크다.

전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고도 경제 성장기에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서 도쿄 등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일구면서 도심에서 전철이나 차로 30분∼1시간 이상 떨어진 베드타운 신도시에 집을 장만하는 사례가 많았다.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후 외곽 베드타운 지역 집값은 폭락한 뒤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층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지고 낡은 베드타운 대신 도심 지역을 선호한다.

미나토구 등 집값이 비싼 도쿄 도심 6개 구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최소 9800만 엔(약 9억 원)에 달한다. 5000만 엔대 초반이던 2012년보다 2배 가까이로 올랐지만, 도쿄 외곽 지역은 좀처럼 집값이 오르지 않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처럼 재건축, 재개발이 원활히 추진되지도 않는다. 주민 상당수가 고령층이고 이해관계를 조율하기도 어려운 데다 가치 상승도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도쿄 도심 한복판이 아니면 단독주택 마을을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취향 또한 빈집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도쿄 외곽 지역의 빈집은 지어진 지 30∼50년 된 목조주택이 많다. 거주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낡은 사례가 많아 철거하고 새 집으로 다시 지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일단 완공된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값어치가 떨어지는 ‘중고품’으로 취급한다. 도심 고급 아파트가 아니면 값이 거의 오르지 않다. 최소 수천만 엔(수억 원)을 들여 새 집을 지을 유인이 떨어진다.

세타가야구에 거주하는 다나카(가명·96) 씨는 50년가량 살던 정든 집을 떠나 요양시설에 들어갔다. 아내는 7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지병으로 병원 생활 중인 70대 아들은 퇴원이 요원하다. 90대에도 비교적 건강해 요양보호사의 돌봄으로 버텼지만, 나이가 들어 생활에 한계가 왔다.

이런 식으로 빈집이 된 주택이 세타가야구에만 5만 채에 이른다. 지자체 중 빈집 수 1위다. 시골은 인구가 적어도 주택 자체가 적지만, 대도시는 빈 땅이 없을 정도로 집이 몰려 있다 보니 빈집 수도 많다.

● 14년 뒤에는 빈집 비율 30% 이상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38년에는 빈집 비율이 31.5%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빈집 증가는 마을의 슬럼화로 이어져 쓰레기 불법 투기, 방화, 야생동물 출현, 위생 악화 등 주거환경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다 보면 각종 범죄가 확산하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

빈집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일본 정부는 1990년 제정한 ‘공가(空家) 대책 추진 특별법’(빈집 특별법)을 대대적으로 손본 개정법을 지난해 시행했다. 건물이 세워진 토지의 재산세를 빈 땅의 최대 6분의 1로 감면해 주는데, 창문 및 벽 일부가 망가진 방치된 빈집에 대해서는 재산세 감면 대상에서 제외해 빈집 철거 후 신축을 유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연간 수만 엔(수십만 원) 세금을 깎아주는 정도의 대책으로는 빈집 확산을 막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빈집에 부과하는 세금을 신설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상속조차 포기하는 마당에 조세 저항이 큰 추가 세금 도입이 쉽지 않다.

올 4월 일본 내각부가 홈페이지에 올린 ‘빈집 대책 및 활용 가이드라인’. 사진 출처 일본 내각부 홈페이지
올 4월 일본 내각부가 홈페이지에 올린 ‘빈집 대책 및 활용 가이드라인’. 사진 출처 일본 내각부 홈페이지
정부는 지난달 빈집 대책 및 활용 가이드라인 홈페이지를 제작해 공개하며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국가적 골칫거리가 되는 빈집 확산세를 낮추려면 궁극적으로는 집을 소유한 개인이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지자체가 시민단체 등과 손을 잡고 빈집 수리와 관리를 대행하거나 가게를 내려는 자영업자와 연결해 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내각부는 “빈집은 노후 및 손상 속도가 빨라 매매 및 임대가 어렵다”며 “빈집을 갖고 있는데 사용할 계획이 없다면 임대, 철거 등을 하루빨리 결정해 실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日#고령화#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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