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새샘]1년째 오르는 전셋값… 전세제도 재검토할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1일 23시 12분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얼마 전 서울 강북지역 아파트를 전세로 내놨던 친구는 달라진 시장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집을 온라인 중개 플랫폼에 올리자마자 부동산 10곳 이상에서 연락이 왔고, 사나흘 새 서너 팀이 집을 보러 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일주일 만에 계약까지 마친 그는 “시세 중 가장 비싼 가격에 내놓은 데다 8월 이사 예정이어서 한참 뒤에야 계약이 될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집이 나갔다”고 했다.

요즘 서울 전셋값 오름세를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서울 전셋값은 지난해 5월 22일 이후 52주 연속, 1년째 올랐다. 여름철 비수기가 다가오지만, 전셋값이 한동안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만 채가 넘었던 서울의 입주 물량은 올해 1만 채 수준이다.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재건축) 같은 대단지 입주가 예정돼 있는 강동구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물량이 없다. 7월이면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요구권 등 임대차2법이 도입된 지 4년이 되는 만큼 ‘2년+2년’으로 계약을 갱신했던 세입자 수요가 몰릴 가능성도 있다.

아파트 매매가격과 달리 전세가격은 서민 생활에 당장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게다가 매매시장 불안까지 초래할 수 있다. 금융위기 직후 긴 부동산 침체기를 겪으며 전셋값이 급격히 올랐던 2010년대를 돌아보자. 당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전세가율)은 2016년 한때 75% 수준까지 올랐다. 결국 이런 높은 전세가율은 2017년경부터 매매가 상승을 떠받치는 지렛대가 됐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주거 형태다.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를 거치며 도심 집값이 급등하던 시기 집주인에겐 시세차익을, 세입자에겐 저렴한 주거를 제공해 모두가 ‘윈윈’하는 제도였다. 하지만 전셋값이 급등해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장점이 사라지며 전세제도는 유효성을 잃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세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을 만들고, 또 이를 떠받치는 공적 보증을 만들었다. 은행들은 사실상 집주인의 갭투자에 돈을 빌려주는 것인데도 집주인의 신용은 따지지 않고 대출을 해줬다. 전세대출은 다음 세입자, 또 그 다음 세입자에게 인계되며 집값 오름세에 따라 몸집을 불렸다. 이렇게 부풀어 오른 풍선이 터진 것이 바로 전세사기다.

이렇게 전세대출과 공적 보증으로 정부가 전세제도의 생명을 연장하는 사이 전세를 대체할 주거 시장은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 공공임대는 높아진 생활 수준과 다양한 주거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임대는 산업화, 체계화하지 못한 채 영세한 개인사업자 중심의 시장에 머무르고 있다. 정책 금융상품 역시 전세보증금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월세에 대해서는 폭넓게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전세 자체는 오래된 제도이지만, 지금처럼 대출로 지탱되는 전세제도는 그 틀이 만들어진 지 이제 10년이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이다. 주택 시장에 미친 영향을 재평가해 볼 때가 됐다. 도입 4년이 되어가는 임대차2법도 마찬가지다. 전셋값이 일단 급등하면 당장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만 급급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정부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전셋값#전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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