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19일 만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이후 10건째이자 올해 들어 이른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이어 4건째다. 이에 야당이 윤 대통령 탄핵 가능성까지 주장하면서 정국은 또다시 첨예한 대치 국면으로 들어갔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미 이달 초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때 예고한 것이다. 하지만 4·10총선 참패 이후 민심에 부응하는 국정 운영을 다짐한 윤 대통령 처지에서 채 상병 사건 처리에 의혹의 눈초리를 던지는 국민을 설득하거나 야당과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별다른 노력도 없이 여야 간 강경 대결을 초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윤 대통령 말대로 특검은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에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 수사 역량의 한계 때문에 언제 수사가 끝날지 알 수 없고, 마무리된다 해도 그 결과를 둘러싼 거센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여론조사에선 국민의 3분의 2가량이 특검 실시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높은 특검 찬성론은 윤 대통령과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해병대 조사 결과의 경찰 이첩을 두고 이해하기 어려운 번복과 항명 논란이 벌어졌고, 수사 대상인 국방장관을 대사로 임명해 도피성 출국 의혹마저 낳았다. 특히 그 핵심에는 윤 대통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국방장관을 크게 질책했다는 ‘VIP 격노설’이 있다. 윤 대통령은 회견 때 이 질문을 받고 “사고 소식을 듣고 국방장관을 질책했다”는 동떨어진 답변으로 의문을 키우기도 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자신을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위헌이자 탄핵 사유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내주 재의결에서 부결되면 22대 국회에서도 강행 처리와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다. 윤 대통령은 먼저 자신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설명하고 의구심을 풀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입을 꾹 다문 채 이해를 바랄 수는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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