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든 조직이든 명성이 높아질수록 위기가 오기 마련이다. 1874년 첫 전시를 열며 탄생한 인상주의는 1881년 6회 전시 때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그룹의 창시자이자 핵심 멤버였던 모네, 르누아르, 시슬리가 전시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인상파 화가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된다.
오직 한 사람, 카미유 피사로는 달랐다. 1회부터 8회까지 모든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한 유일한 작가로, 인상주의를 끝까지 고수했다. ‘대화’(1881년·사진)는 1882년 7회 인상주의 전시에 출품한 작품으로 파리 근교 퐁투아즈의 시골 농부를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 두 여인은 녹음이 우거진 길에서 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흙 묻은 신발에 앞치마를 두른 걸 보니 밭일을 마치고 오는 길이거나 잠시 쉬는 중에 친한 이웃을 만난 듯하다. 두 사람 사이의 울타리는 서로를 갈라놓는 장치라기보다 오히려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왼쪽 여성은 왼팔을 울타리에 걸치고, 오른쪽 여성은 울타리를 손으로 잡고 대화 중이다. 마치 깊은 속내를 얘기하듯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다.
일상적인 주제, 과감한 대각선 구도, 밝은 색채, 짧고 빠른 붓질 등 그림은 인상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피사로는 밀레를 존경했지만, 밀레처럼 농부를 미화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본대로 그리고자 했다. 인물들이 밀레의 농부들보다 더 현실적이고 친근해 보이는 이유다.
피사로는 그림만큼이나 따뜻하고 친절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따르는 젊은 화가들이 많았다. 다혈질로 유명했던 세잔도 그를 ‘아버지 같은 존재’, ‘선하신 주님을 닮은 사람’이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다양한 성격의 젊은 화가들을 그룹으로 이끌었던 그는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터. 어쩌면 화가는 인상주의의 위기도 대화를 통해 이겨내고픈 심경을 이 그림에 담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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