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비혼 선언하면 축의금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3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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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축의금 지출이 많은 5월,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청첩장을 받고 고민이 많아진다. 받을 일 없는데 꼭 내야 하나. 얼굴 안 볼 사이도 아니니 5만 원만 내고 가지 말까. 요즘은 당당하게 ‘비혼식’을 열고 축의금을 회수하거나, 비혼 친구가 여행이나 이사 갈 때 결혼한 친구들이 목돈을 모아 축의금 빚을 갚기도 한다. 몇몇 기업은 “비혼이지만 축의금은 받고 싶어” 하는 직원들에게 지원금을 주는데 일명 ‘비혼 축의금’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비혼 축의금은 사내 복지와 공정을 중시하는 MZ세대 직원들을 붙들어두기 위해 기업들이 하나둘 도입하기 시작한 제도다. 직원이 결혼하면 유급휴가와 축하금을 주듯 비혼 직원에게도 비슷한 혜택을 주는 것이다. LG유플러스가 비혼 선언 시 결혼 축의금과 같은 기본급 100%와 유급휴가 5일을 주고, 롯데백화점은 40세 이상 직원이 비혼을 선언하면 지원금과 유급휴가 5일을 준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IBK기업은행 노조가 이 제도 도입 요구를 준비 중이다.

▷비혼 축의금을 요구하는 쪽에서는 일을 잘해 포상금과 휴가를 주는 것은 괜찮지만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혜택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사내 복리후생 제도가 기혼자를 우대하고 있는데, 직원들 대부분이 결혼하고 정년 때까지 다니던 시절엔 문제가 없었지만 요즘은 미혼도 많고 회사도 자주 옮겨 다니므로 시대 변화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료 직원이 신혼여행이나 출산휴가를 간 동안 빈자리를 메우느라 고생한 비혼 직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는 차원에서도 지원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대쪽에선 경조금이란 결혼하고 아이 낳고 부모님 돌아가시면 힘들고 비용도 드니 주는 것인데 결혼도 출산도 안 하면서 비혼을 선언했다는 이유만으로 축의금을 요구하는 건 경우가 아니라고 따진다. 그런 논리라면 ‘무자녀 학자금 지원’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기업으로선 인구 늘려주는 가족이 있어야 존재하므로 결혼하고 아이 낳는 직원을 우대하는 게 당연한데, 민간기업도 아니고 IBK기업은행 같은 공공기관이 비혼 축의금을 주면 저출산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예전에 어느 기업에서는 임직원 자녀가 대학에 가면 축하금을 주는 문제로 특혜 논란이 제기된 적이 있다. 결국 자녀가 대학을 안 가도 비슷한 지원금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후로는 대학 축하금 놓고 누군 받네 못 받네 하는 일은 사라졌다. 비혼 축의금 논란도 소수였던 비혼 인구가 늘면서 벌어진 일이다. 결혼이든 동거든 젊은 청년들이 축하받으며 짝을 짓고 아이도 낳는 문화가 대세가 돼 비혼 축의금 가지고 입씨름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결혼#축의금#비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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