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사태에서 전공의 대신 투입된 진료보조(PA) 간호사 제도화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PA 간호사의 업무를 명시한 간호법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단에 제출했다. 하지만 지금껏 상임위조차 열리지 않으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가 필요할 때만 쓰고 버려지는 티슈 노동자일 수 없다”고 반발하며 간호법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 병원에서 일하는 PA는 1만165명으로 전체 간호사의 6% 수준으로 집계된다. 주로 대학병원에서 약물 처방, 검사, 수술 보조 등 의사 업무 일부를 대리한다. 현행법상 이런 의료 행위는 의사만 할 수 있다. 전공의 업무를 떠맡은 PA는 사실상 불법을 감수하며 ‘그림자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필수 의료 의사를 구하기 어려워진 병원들이 그동안 꾸준히 PA 채용을 늘렸고, 정부도 이를 묵인하면서 아예 관행이 됐다.
2월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기관 삽관, 약물 투여 등 의사 업무를 PA가 일부 대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간호계는 불법 행위를 강요당하다가 의료 공백 사태가 정리되면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것 아닌지 우려한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에도 그 자리를 메우던 간호사들이 고발당한 적이 있다. 지난해 정부는 PA 제도화를 포함한 간호인력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정부가 필요할 때만 PA 간호사를 활용하고, 의사 단체를 자극할까 제도화 노력은 시늉만 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구인난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다. 의대 증원 이후에도 실제 의사 양성까지 10년 가까이 걸린다.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바꾸려면 오랜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선 PA를 제도화하고 자격 체계를 마련해 필수 의료 공백에 대응하고 있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서 PA 제도화를 담은 간호법이 처리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국회 탓만 하며 방관할 것이 아니라 PA 간호사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수가를 신설하는 등 시범 사업이라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미 필수 의료를 지탱하는 인력이 된 PA를 언제까지 법의 사각지대에 유령처럼 남겨둘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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