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수처 ‘VIP 격노설’ 녹취 확보… 대통령실 수사 주저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4일 23시 27분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휴대전화에서 이른바 ‘VIP 격노설’이 언급된 녹취 파일을 확보했다고 한다. 김 사령관이 자신의 참모와 통화하던 중에 이런 취지로 말한 게 녹음됐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해병대 관계자로부터 ‘김 사령관이 해병대 내부 회의에서 대통령 격노설을 언급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주장 외에 격노설과 관련된 녹취나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외압 의혹의 시발점은 지난해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통령실 회의다. 이 자리에서 채 상병 순직과 관련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보고됐고,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 하나”라고 질책했다는 게 격노설의 주된 내용이다. 회의 이후 김 사령관이 수사 결과 브리핑을 취소시켰는데, 그 이유를 묻자 김 사령관이 “VIP가 격노하면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는 게 박 전 단장의 주장이다. 본인의 녹취 파일이 나온 만큼 김 사령관도 격노설을 언급했다는 점은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브리핑 취소 이틀 뒤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조사 결과를 이첩하자 국방부가 경찰에서 자료를 회수하면서 외압 의혹이 더욱 불거지게 됐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부터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실에 대한 본격 수사가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하더라’는 녹취와 진술을 바탕으로 보다 직접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게 공수처의 과제다. 대통령실 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조사와 함께 회의 관련 자료를 확보할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지난해 9월 수사에 착수한 공수처는 지금까지 김 사령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을 소환하고 이들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국방부와 해병대에 대한 수사를 통해 외압 의혹을 풀 실마리는 찾은 셈이다. 진상 규명은 지금부터다. 채 상병이 순직한 지 벌써 10개월이나 지났고 국민은 이와 관련된 의혹들의 실체가 밝혀지길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공수처가 머뭇거릴 시간도, 이유도 없다.
#채모 상병 순직#수사 외압 의혹#vip 격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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