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 중국 송나라 손광헌(孫光憲)의 북몽쇄언(北夢瑣言)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당(唐)나라 때 형주(荊州)는 학문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해마다 지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중앙에 보냈지만 합격자가 없어 사람들은 형주를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한 상태라는 뜻으로 ‘천황(天荒)’의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유세(劉蛻)가 형주의 지방시험 합격자로서 처음으로 중앙시험에 합격했지요. 그래서 그를 ‘파천황(破天荒)’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형남군절도사인 최현(崔鉉)이 유세의 합격을 축하하며 ‘파천황전(破天荒錢)’이라고 하여 상금 70만 전을 보냈으나 유세는 이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 생각거리: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기록된 일화입니다. ‘조선 선조 때 찬성(賛成) 이상의(李尙毅)가 성천 부사(成川府使)로 부임하였다. 성천은 먼 변방에 위치한 궁벽한 시골이어서 백성들이 학문을 하지 않아 과거에 이름이 오른 자가 없었으므로 공께서는 학문을 일으키는 것으로 급선무를 삼아 백성 중에 준수한 자들을 뽑아 몸소 가르치고 격려하니, 온 고을이 한마음이 되어 학업에 열중하여 글 읽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3년이 채 되기 전에 한 사람이 소과(小科)에 급제(及第)하니, 파천황(破天荒)이라 하였다. 이 뒤로는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벼슬길로 나간 자까지 생기니, 사람들은 모두 이공(李公)의 공덕을 칭송하였다’고 한 데서도 용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양반이 없는 시골이나 인구수가 적은 성씨에 인재가 나서 본래의 미천한 상태를 벗어난다는 파벽(破僻)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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