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위로한 신경림 시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7일 22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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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1973년 발표된 신경림 시인(사진)의 시 ‘농무’의 일부입니다. 22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난 시인은 이 시에서 산업화 흐름 속 소외되고 몰락해 가는 농촌의 모습과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농민들의 울분과 비애를 담담한 어조로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시인은 1956년 문학예술지에 ‘낮달’, ‘갈대’, ‘석상’ 등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지만 이후 10여 년간 시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을 떠나 강원 일대를 떠돌며 광부, 인부, 학원 강사 등을 전전했는데 독재 정권에 대한 미움과 기성 문단에 대한 불신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단한 낭인 생활을 하던 그때를 시인은 “글 한 줄 안 쓰고 책 한 권 안 읽으며, 오로지 증오심만으로 버틴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을 다시 문학으로 이끈 건 동료 시인이자 돈독한 친구였던 김관식이었습니다.

1965년 겨울 친구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시인은 서대문구 홍은동 무허가 주택에 머물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전 시들과는 결이 달라졌습니다. 10년이라는 고된 낭인 생활에서 시인은 “한결같이 가난했고”, “복수심과 체념으로 조금씩 비뚤어져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전혀 그들 탓이 아니었던”(수필 ‘눈길’·1977년)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강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시 ‘농무’(1970년)는 그렇게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창작과비평의 편집자였던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훗날, 그가 쓴 몇 편의 시를 받아 들었을 때 “충격과 흥분을 느꼈다”고 회상했습니다. 징과 꽹과리를 들고 춤을 추는 농민이 주인공인 그의 시는, 그때까지 나왔던 한국 문단의 참여시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1973년 자비 출간된 시집 ‘농무’는 서점에 깔리자마자 300부 한정판이 모두 팔리며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75년 한국 문학계에 현실 참여 문학이라는 큰 흐름을 만들어 낸 창작과비평사의 첫 번째 시선집으로 다시 출간됐습니다.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눈길을 두었던 신경림 시인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영결식에서 “시의 고아가 된 심정”이라며 애통해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문학계는 다시 한 명의 큰어른을 잃었습니다.

#시인#신경림#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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