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포기해버린 느낌,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콩에 사는 찰리(19)는 열다섯 살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집에 가뒀다.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사는 30㎡ 넓이 아파트, 그중에서도 작은 이층침대가 그의 세계 전부였다. 밥도 침대 위에서 먹었다. 미국 CNN방송은 최근 찰리를 비롯한 아시아 청년들의 은둔 문제를 다루면서 “홍콩과 일본, 한국에 은둔형 외톨이가 150만 명 이상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CNN이 거론한 3개국은 모두 입시 등 경쟁이 치열하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한 나라로 꼽힌다. 찰리는 교사들이 ‘나쁜 학생’을 꾸짖을 때 했던 “그런 식이면 나중엔 거지가 될 거다”라는 말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였다고 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세 나라는 모두 자살률이 아시아에서 6위권에 드는데, 특히 우리 20대의 자살·자해 시도는 최근 수년간 급증 추세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은 청년들이 나약해서 갖게 되는 생각이 아니다. 성적이나 취업, 외모 등 획일적 기준으로 모두를 줄 세우니 이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이들이나 자라는 아이들까지도 일찌감치 ‘낙오했다’, ‘실패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본과 함께 유난히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문화를 가진 탓인지 ‘비교질’이 잦고, ‘○○계급표’ 같은 게 난무한다. 그러나 성공의 ‘좁은 문’을 통과하는 이들은 엎어놓은 압정 끝처럼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를 자책으로 몰고 가 불행하게 만드는 구조다.
▷하지만 압축 근대의 폭력을 앞서 헤쳐온 기성세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누기보단 부아만 돋우는 훈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다들 그러고 사는데 왜 너만 유난을 떠느냐.”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이 자주 듣는 말이라고 한다.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의 이론을 빌리면 생리적·안전 욕구 충족에 급급했던 부모 세대가 과거의 경험에 갇혀 애정·소속, 존중, 자아실현 등 욕구의 좌절에 잘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다. 자식이 은둔 중이라는 걸 숨기려고만 하다가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스스로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은둔에서 벗어나 다른 은둔 청년을 돕고 있는 한 청년의 말이다. 우울증 경험을 진솔하게 다룬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는 “힘내라는 말, 자신감을 가지고 위축되지 말라는 말은 때론 독”이라며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의심 없이 편안하게, 그뿐이다”라고 했다. ‘실패해도 괜찮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 은둔하는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해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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