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의혹의 시발점으로 지목된 이른바 ‘VIP 격노설’과 관련해 국민의힘 성일종 사무총장이 “대통령이 격노한 게 죄인가”라고 말했다. 성 총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이) ‘작전 수행하러 갔던 사람들이 무슨 문제가 있냐’ 이렇게 지적을 한 것이고, 국방부 장관이 이 부분을 해병대 사령관한테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하급 간부 처벌에 반대했고,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조치를 취했다는 취지다.
지난해 7월 31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대통령실 회의 이후 용산과 국방부, 해병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 전 장관은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수사단의 브리핑은 취소됐다. 그 직전 이 전 장관이 대통령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정황이 있다. 같은 날 대통령안보비서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통화했다. 이틀 뒤 수사단이 경찰에 자료를 넘기자 국가안보실 2차장, 공직기강비서관까지 나서 국방부, 해병대 관계자들과 통화를 했고 자료는 회수됐다. 이렇게 호들갑을 떤 이유를 밝히는 게 외압 의혹 수사의 핵심이다.
그러려면 윤 대통령이 화를 냈는지보다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후 법리를 검토해 위법 여부를 판단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격노가 죄냐’는 성 총장의 발언은 윤 대통령의 격노 자체가 외압의 본질이고 처벌 대상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다. 법적 쟁점을 흐리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 또 성 총장의 말대로 해병대 사단장이 아니라 하급 간부들이 혐의자에 포함된 부분을 윤 대통령이 문제 삼은 것인지도 반드시 진위가 가려져야 한다.
하지만 진상을 알고 있을 만한 사람들은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서 뭔가 지시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고만 했다. 김 사령관은 공수처 수사에서 ‘격노설’이 담긴 본인의 녹취파일이 발견된 뒤에도 해명이 없고,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입을 닫고 있다. 이들의 침묵과 회피는 용산과 군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더욱 키울 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