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을 겨냥한 글로벌 기업들의 반도체 ‘특허 공세’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반도체 특허 소송에 휘말리며 견제를 받고 있다. 최근 5년간 미국에서만 국내 대기업들이 26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고 한다. 그나마 자체 기술력과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중견·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반도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은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특허청에 따르면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미국), 도쿄일렉트론(일본), ASML(네덜란드) 등 글로벌 장비업체 ‘빅4’가 지난해 국내에 등록한 특허 건수는 1260건으로 4년 새 2배 넘게 급증했다. 이들 업체는 3년째 1000건 이상의 특허를 등록하며 국내 소부장 기업을 대상으로 법적 분쟁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다.
문제는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후발 주자여서 글로벌 기업의 원천특허를 피해 제품을 개발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게다가 중견·중소업체가 대부분이어서 한번 소송에 휘말리면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내 한 장비업체는 램리서치가 제기한 특허 소송에서 패소해 연 매출에 맞먹는 금액을 배상해야 할 처지다. 반도체 웨이퍼를 깎는 식각 공정 분야 1위인 램리서치는 이 판결을 토대로 국내 업체들에 관련 부품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라는 내용 증명까지 보냈다고 한다.
초격차 기술 경쟁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 특허 분쟁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쏟아야 할 상황이다. 개별 중견·중소기업이 글로벌 기업의 특허 소송에 맞서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특허 분쟁에 발목 잡혀 소부장 기업들의 성장이 막힐 경우 반도체 생태계를 이루는 소부장 산업의 국산화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글로벌 업체의 특허 심사를 강화하는 등 특허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민관이 특허 보호와 리스크 관리, 소송 대비 등에 공동 대응하는 한편 경쟁사들이 넘볼 수 없는 독자 기술력 강화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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