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온 ‘채 상병 특검법’이 어제 재표결에서 부결됐다. 재표결에 참가한 의원 294명 가운데 3분의 2인 196명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되는데 찬성 179표, 반대 111표, 무효 4표였다. 야당 의원 179명이 표결에 참여했고 이들이 대부분 특검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힘 등 범여권 소속 의원들의 이탈표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표결에 앞서 국민의힘 소속 안철수 김웅 유의동 최재형 김근태 의원 등 5명이 공개적으로 특검 찬성 의사를 밝혔다. 찬반을 정하지 못한 의원도 최소 5명 정도 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여당은 특검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을 맨투맨 식으로 접촉하면서 이탈표가 늘어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결과적으로 여당에서 표 단속이 이뤄지면서 채 상병 특검법은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그렇다고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이 이대로 묻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국방부와 해병대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 이첩 보류 및 회수 과정에서 외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정황을 상당 부분 확보했고 새로운 단서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공수처는 특검 도입 여부와 무관하게 성역을 두지 말고 수사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
또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즉시 특검법을 재발의하겠다고 공언했고 다른 야당들도 동조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법안 추진과 표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을 놓고 다시 한 번 여야가 대치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벌어진 혼란이 새 국회에서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야 모두 한 발씩 양보라도 해서 이를 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초 이 사건은 스무 살 해병이 안타깝게 희생된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사건 처리 과정에서 외압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 대사 임명 문제가 불거진 후 채 상병 순직 자체는 뒷전으로 밀리고 정쟁의 소재로 변질된 형국이다. 특검법을 놓고 여야가 정치적 득실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하루빨리 진상을 밝히고 불필요한 갈등이 길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의 책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해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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