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건’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한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3차례 전화를 건 사실이 그제 공개됐다. 또 이른바 ‘VIP 격노설’의 단초가 된 국가안보실 회의가 있었던 날 대통령실 누군가가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기록도 공개됐다. 항명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측이 재판부를 통해 통신 기록 조회를 해 입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일 검사 시절 쓰던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해 이 장관과 3차례 통화했다. 점심시간인 낮 12시 7분, 43분, 57분에 걸었고, 길게는 13분, 짧게는 1분가량 대화했다.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하고, 수사단장이 보직 해임 통보를 받은 그날이었다. 대통령의 3차례 통화 전후로 국무총리,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경호처장,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조정실장이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한 기록도 나왔다. 권력 핵심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대통령은 이후 8월 8일 이 장관에게 4번째 전화를 걸었다. 국방부 장관은 그 이튿날 “해병대 조사 내용을 국방부가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 초동 조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 사건은 20세 젊은 해병의 안타까운 죽음이 무리한 상부 지시에 따른 것인지를 가려내고, 필요한 조치를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 하나”라며 질책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대통령실의 수사 개입 여부를 가리는 쪽으로 불똥이 튀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급박한 일이 있었는지 대통령이 점심시간에 3차례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해병대사령관이 ‘대통령 격노설’을 언급했다는 통화 녹음, 이번에 드러난 통화 기록은 지난해 7월 31일 안보실 회의를 가리키고 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대통령실 누군가가 유선전화로 국방부 장관과 3분 가까이 통화했다고 한다. 결국 회의에서 대통령이 무슨 발언을 했는지, 이후 국방부 장관에게 어떤 지시가 내려갔는지가 핵심이다. 또 그 국방부 장관을 윤 대통령이 총선 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켰던 것도 이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이 사건은 한 병사의 사망을 넘어 해병대 조사 과정의 외압 의혹, 진실 은폐 의혹을 받고 있다. 지금 진상 규명을 가로막을 힘은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국방부 장관의 통화 기록까지 나온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기다려 보자”며 뒤로 빠질 수만은 없다. 설명을 내놔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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