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4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전국을 누빈 적이 있다.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지역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 거제와 서산에서의 어촌계 방문이 기억에 남는다. 어민들과 함께 조업하며 수산업의 혁신을 주제로 토론하고, 이따금 짠 내 나는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나에게 바다는 보물처럼 값진 시간을 선사한 가족 같은 곳이다.
한반도 서쪽 바다와 닿아 있는 경기도에도 이 같은 보물이 널려 있다. 270km에 걸친 해안선과 168㎢의 갯벌, 42개의 섬, 32개의 항구를 품은 경기도가 대한민국 해양, 수산, 항만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화성시의 전곡항은 경기바다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다. 경기도의 대표적 어항(漁港)이자, 수도권 최고의 마리나 시설을 갖춰 해양레저 문화를 체험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할 만하다. 제29회 바다의 날 기념식이 바로 그 전곡항에서 열린다. ‘경기바다 시대’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다.
경기바다는 수도권과 가깝고, 저렴한 비용으로도 즐길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그 덕분에 ‘당일치기 바다여행’을 즐기려는 인파로 언제나 북적인다. 한편으로, 그곳은 우리 어촌의 ‘소멸 위기’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어업 인구는 급속히 줄고, 어촌의 고령화는 날로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경기 바다를 ‘잘 쉬는 곳’에서 ‘잘 사는 곳’으로 바꿔 가는 노력이 각별히 필요한 이유다.
경기도는 ‘어촌뉴딜 300’으로 어촌의 정주 여건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어촌 신활력 증진’ 사업을 통해 어민들께서 깨끗한 수산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병행 중이다. 성과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안산과 화성의 장대한 갯벌에서는 고소득 품종인 새조개와 새꼬막이 새로운 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진 김 양식의 최적지로도 ‘경기바다’가 급부상 중이다. 최첨단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잘 접목해 스마트 바다농장을 가꿔낸다면, 조만간 평야와 바다를 아우르는 ‘쌀’과 ‘김’이 경기도의 양대 특산품으로 꼽힐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쉬는 곳’과 ‘사는 곳’을 뛰어넘는 바다의 새로운 가치는 역설적으로 기후위기의 시작에서 발견된다. ‘경기바다’는 기후변화 위기 속에 ‘기회의 바다’를 열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자립형 어항(漁港)을 개발하고, 어촌뉴딜사업으로 추진하는 건축물에는 친환경 에너지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해조 숲 조성을 통해 블루카본을 발굴하고, 바다와 갯벌의 수상형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해양 RE100’ 구현으로 바다와 인류의 공존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바다는 생명의 요람이자 삶의 터전이고 휴식처다. 이와 동시에 기후변화의 해법을 갖고 있는 보고(寶庫)다. 때마침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위기의 어촌이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기회의 어촌’ ‘가치의 바다’를 만들기 위해 바다의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설계와 지방정부의 실천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바다의 날을 맞아 경기바다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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