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 로저 위커 의원은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제안을 담은 국방투자계획 제안서 ‘21세기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내놨다. 힘을 통한 평화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슬로건으로 유명하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 소련을 붕괴의 길로 몰아가면서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레이건식 외교정책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함축된 제목이다.
위커 위원처럼 레이건식 외교정책을 신봉하는 이른바 ‘레이건 공화당원’들이 최근 부쩍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상원 최장수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과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 제임스 리시, 하원 외교위원장 마이클 매콜, 하원 군사위원장 마이크 로저스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레짐 체인지’ 주장하는 안보 매파
고립주의 성향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의회 지도부를 장악한 레이건 공화당원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1기 때부터 보좌해온 핵심 외교안보 측근들 상당수가 레이건 외교정책의 신봉자들이다. 국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외교정책 기조가 ‘힘을 통한 평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도 9일 펴낸 외교안보 정책 제안집에서 “미국 우선 정책은 힘을 통한 평화를 촉진해 미국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워싱턴 외교가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와 레이건 외교정책의 결합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스노크로프트센터 매슈 크로닉 부회장은 “레이건식 힘을 통한 평화를 앞세우고, 동맹 비용 분담 등 일부 정책은 트럼프식 고립주의를 혼합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손잡은 레이건 공화당원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 및 민주당과는 미중 관계 등 안보 환경에 대한 인식이 여러 면에서 다르다. 무엇보다 이들은 현 미중 관계를 경쟁으로 규정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싸워 이겨야 할’ 적대 관계로 본다.
中 핵 확장 겨냥, 인도태평양 핵 공유 제안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부보좌관을 지낸 매슈 포틴저와 마이크 갤러거 전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지난달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관리해서는 안 된다. 승리해야 한다”고 했다. ‘데탕트’(긴장 완화) 대신 레이건식 봉쇄 정책으로 중국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유도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위커 의원은 자신의 국방투자계획 제안서에서 “포틴저의 말이 맞다”며 “미 국방 예산을 걸프전 이전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5%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핵 군축을 주장하는 바이든 행정부나 민주당과 달리 미국이 핵무기 증강을 통해 중국·러시아와의 핵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위커 의원은 물론 상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 리시 의원 등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와 인도태평양 핵 공유 체계 구축을 공론화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와 레이건식 냉전 전략의 결합은 미중 관계의 더 큰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틈새를 노린 북한의 모험주의가 한반도에 언제 불씨를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불필요하게 긴장을 고조시키기는 ‘강 대 강’ 일변도의 대응보다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 전략적 기회를 찾는 냉철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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