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의 반은 이미 지났다. 생각하기에 1년 12개월 중 가장 버겁고 힘들게 느껴지는 달은 5월과 연말 전 11월이지 않을까 싶다. 5월에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바쁘고, 연말에는 끝내지 못한 업무로 인해 바쁘다. 또 전자는 일 년의 절반이 지났으니 일에도, 가족에게도 신경 쓰라고 하는 것 같고, 후자는 일 년이 마무리돼 가니 잘 챙기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어찌 됐든 둘 다 지내기 쉽지 않은 달이다.
어느덧 한국에서 열두 번째 5월을 치렀다. 이번에도 쉽지 않았다. 특히 이번 5월만큼 정부 출산 및 육아 지원 정책이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걸 실감한 적은 없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부모들에게 공문을 보내 5월 공휴일 어린이집 휴무에 동의해 달라고 하는데, 나를 포함해 감히 어떤 부모가 “동의 못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나에게 지금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자녀를 키우는 환경, 키워야 하는 미래 때문에 힘들다고 말할 것이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의 크나큰 오해가 있다. 부모들이 출산 또는 육아 장려금을 굉장히 많이 받는 줄 안다는 점이다. 내 경우 자녀를 둘 낳았기에 다둥이 엄마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아, 물론 받는 혜택이 있다. 양육수당 10만 원과 보육료 지원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정부에서 새롭게 나오는 출산·육아 장려 정책들은 현재 태어나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대부분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 혹은 미래의 부모들을 위한 유인책이다.
한국에서 살면 살수록, 이런 점이 좋고 저런 점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이 자꾸만 보인다. 한때는 뭐든 좋고 신기하기만 하고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울 때마다 기쁜 마음이 있었다. 마치 사람이 사람에게 처음 사랑에 빠질 때처럼 상대의 좋은 점만 보였다. 나에게 한국은 좋은 것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대해 알아갈수록 실망스러운 부분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어린이집이었던 자리에 애견호텔, 애견유치원 등이 생기는 걸 보면서 허전하고 우울한 마음이 든다.
2009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시장이나 대형마트의 풍경이 특히 그렇다. 사람들에게는 정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 정으로 인해 얼굴에 희망과 긍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쁘다는 듯 남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얼굴 표정과 자세와 행동에서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형마트를 찾아갔다. 5, 6년 전 방문했을 때와 마트 분위기가 매우 달라져 있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별로 없고 진열된 물건 개수도 적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틀어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얼굴에선 밝음이 사라졌고 근심 걱정만 보였다. 물론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게 된 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많은 것을 포기할지언정 과거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빨리 한 편이라 주변에 있는 미혼 친구들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오곤 한다. 그때마다 말한다. “국가가 하는 말은 그저 참고용으로 받아들이고, 내 아이는 그저 내가 건사한다는 마음으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길 바란다”고.
아이는 개인이 키우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커가는 데 꼭 필요한 어린이집과 보육시설, 학교 등 보육 인프라는 국가가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인프라는 대도시에 몰리게 되고, 그럴수록 대도시와 그 밖의 지역 간 인구 격차는 심해진다. 그렇게 되면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에도 거품이 낄 테고, 그것이 또 결혼과 임신, 출산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누구나 알 것 같은데, 막상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걸까. 그런 모순들이 내 눈에는 매우 많이 보인다. 지금 한국에는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이들이 많다. 언젠가 한국에서의 결혼, 출산이 어떠냐고 나에게 묻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