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왕 로보의 실수[서광원의 자연과 삶]〈90〉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4일 2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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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린이용 책인데 어른들이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책들이 더러 있다. ‘시튼 동물기’도 그중 하나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시튼)’이 자연의 동물 그림을 그리면서 관찰한 것을 토대로 만든 이 책은 맨 앞에 실려 있는 ‘늑대왕 로보’로 유명하다. 1890년대 미국 뉴멕시코주 북부 평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특히 리더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당시 사람들의 목축지 확장으로 대대로 살아왔던 서식지를 잃게 된 로보는 이 상황에 정면으로 맞선다. 야생 사냥이 아니라 가축 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목장주들의 눈엣가시가 되고 쫓고 쫓기는 상황이 된 건 당연한 수순. 하지만 얼마나 영리했던지 엄청난 현상금을 내걸었는데도 잡힐 뻔한 적도 없었다. 우람한 체격과 뛰어난 리더십 덕분에 이 지역 이름을 딴 ‘커람포의 왕’으로 불렸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로보는 싸울 줄 알았다. 우선, 정예 조직을 유지했는데 무리 규모는 항상 자신을 제외하고 다섯이었다. 협력 사냥을 하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사자들 역시 대개 5∼7마리로 무리를 구성하는 걸 보면 기동성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규모가 클수록 위세는 올라가지만 기동성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과의 직접 맞대결은 철저하게 피했다. 먼 거리에서도 그들을 겨냥할 수 있는 총 때문이었다. 그 대신 허점을 노리는 전략으로 가장 상태가 좋은 가축을 잡아갔고 그렇게 직접 사냥한 것만 먹었다. 은밀하게 설치한 덫과 독약을 모두 물어다가 한곳에 모아 놓는 지능은 물론이고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앞장서 난관을 돌파하는 등 리더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로보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가끔 그의 발자국을 앞질러 간 다른 발자국이 있었다. 늑대 사회는 서열이 엄격해 사냥감 추격 상황 이외에는 절대 대장 앞을 걸어갈 수 없는데, 이건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였다. 한 목동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그 발자국은 로보의 짝 블랑카의 것이었다.

이들을 쫓던 사냥꾼은 이걸 기회로 삼아 블랑카를 유인해 포획에 성공한 다음, 울부짖게 한다. ‘네 연인이 잡혔는데 어떡할 거냐?’ 하는 물음이었다.

영리하고 철두철미한 로보였지만 아킬레스의 발뒤꿈치 같은 유일한 약점, 사랑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복수심에 사로잡혀 이전엔 하지 않던 일들을 벌이던 와중에 평정심을 잃고 블랑카의 발자국들이 찍힌 곳 근처를 서성이다 덫에 걸려든 것이다. 그를 쫓는 사냥꾼들이 몰래 찍어 놓은 발자국이었다.

덫에 걸린 로보는 구원을 청하듯 커다랗게 울부짖었으나 답하는 소리는 없었다. 노여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다 올가미가 씌워지자 체념하듯 멀리 펼쳐진 끝없는 평원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 마지막 울부짖음 이후 로보는 한 번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작품은 로보가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조용히 잠자듯이 죽었다고 쓰고 있다.

리더는 자기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구성원이 잘한 게 자기 성과가 되듯, 그들의 잘못 역시 자기 잘못이다. 어느 역사에서나 측근 관리를 강조하는 이유다.
#늑대왕#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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