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수저계급론’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사회 전반으로 퍼진 이 담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자조적 인식을 반영한다.
수저계급론은 사회 이동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 이동성이란 개인이 가난하게 태어나도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부유하게 태어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가난해질 수 있다는 변화 가능성을 의미한다. 사회 이동성이 낮은 사회에서는 부와 빈곤이 대물림돼 갈등이 누적되고 능력이 적재적소에 배분되지 못해 성장이 지체된다.
사회 이동성은 여러 정부가 강조해 온 소득분배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두 개념은 구분된다. 소득분배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면 사회 이동성은 기회의 평등을 추구한다. 소득분배가 오늘의 격차에 주목한다면 사회 이동성은 내일의 가능성을 중시한다.
지난달 초 정부가 사회 이동성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일자리, 교육, 자산 형성에 관한 다양한 지원 방안들이 포함됐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노동, 교육, 연금 개혁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사회 이동성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다 보니 기존의 소득분배 중심 정책들과 차별화되는 내용들이 눈에 띈다. 자활성공지원금을 신설해 근로능력을 갖춘 빈곤층의 자립 유인을 강화하고, 생계급여 예외 규정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불리한 성장 환경을 극복하려는 ‘개천 용’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 편입학 규제를 완화해 입학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도 사회 이동성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사회 이동성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대책을 발표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사회 이동성이 진정으로 제고되려면 결국 노동개혁이 중요하다.
평범한 가구의 소득은 대부분 노동소득이므로 사회 이동성은 노동시장 임금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국의 임금 구조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근속연수와 사업체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해 장기 근속하는 것이 높은 임금을 받는 데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규직 보호가 강한 한국 노동시장에서 대기업 정규직 진입은 학교 졸업 직후에 대부분 이루어진다. 이 시기는 구직자의 업무 능력 검증이 어려워 학벌이 중요한 판별 기준이 된다. 학벌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영향을 무시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졸업 직후의 취업 성과가 생애 소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장 구조는 사회 이동성을 제약하기 쉽다.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는 그의 작품 ‘첫사랑’에서 “젊음이 아름다운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청년이 자신의 가능성을 불신하는 사회는 아름답지 못하고 발전하기도 어렵다. 사회 이동성은 중장기 사안으로 꾸준한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 사회 이동성 제고를 반대할 정치 세력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첫걸음을 뗀 만큼 정부와 정치권의 지속적인 관심을 기대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