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4일 영국 총선이 실시된다. 대다수 언론과 여론조사회사는 집권 보수당이 참패하고 제1야당 노동당이 2010년 이후 14년 만에 정권을 잡는다고 본다. 승리 정당은 확정됐고 노동당이 하원 650석 중 몇 석을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노동당 일각에서는 소속 최장수 총리인 토니 블레어 전 총리(1997∼2007년 재임)를 탄생시킨 1997년 총선의 압승(418석)을 내심 기대한다.
다만 노동당이 승리해도 그 이유는 노동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보수당이 못해서라는 원인 분석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내 실력’이 아니라 ‘상대 헛발질’로 집권했으니 수권(受權) 능력을 입증하라는 요구 또한 빗발칠 것이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62)의 앞날이 녹록하지 않은 이유다.
보수당이 주도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가 2016년 가결된 후 노동당은 내내 집권 기회를 잡았다. 투표 전부터 “값싼 동유럽 인력과 상품 등이 차단되면 교역 비중이 높은 경제에 좋지 않고 수도 런던의 금융 허브 위상도 타격받는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도 투표를 강행했고, EU와의 이혼 조건을 둘러싼 진통 또한 상당했다.
이를 감안하면 보수당이 이후 전국단위 선거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노동당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2015∼2020년 당을 이끈 제러미 코빈 전 대표, 후임자 스타머 대표 모두 보수당 공격에만 앞장섰을 뿐 유권자에게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오랫동안 수권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당내 코빈 전 대표를 따르는 강경 좌파 ‘코빈파’와 블레어 전 총리를 추종하는 온건 좌파 ‘블레어파’의 내분도 격화했다. 노조, 영국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불리는 중북부 유권자를 등에 업은 코빈파는 EU 체제가 저소득층 일자리를 뺏었다며 당론에 반하는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브렉시트 후에도 이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블레어파는 경제 악영향을 우려해 브렉시트를 반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등 대도시 젊은이가 블레어파를 지지한다.
이렇듯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던 스타머 대표가 총리 등극의 기회를 잡은 것은 브렉시트 여진이 여전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고물가 고금리 위협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산층을 대표하는 주택 소유자는 과거 보수당의 ‘집토끼’였다. 하지만 생활비와 대출 상환 부담이 늘어난 이들이 노동당 지지자로 변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다만 스타머 대표의 앞날이 순탄하진 않다. 국제 통계사이트 ‘슈타티스타’의 지난달 조사에서 영국인의 55%는 “브렉시트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올바른 결정’(31%)보다 훨씬 많았다. 브렉시트를 되돌릴 길이 없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그 후폭풍을 완전히 없애고 경제 성장에 매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보여준다.
당내 화합 또한 쉽지 않다. 코빈파와 블레어파는 애초에 반(反)보수당 외에는 접점이 없다. 대(對)이스라엘 정책도 다르다. 특히 코빈 전 대표는 과거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의 지지 집회에 참석했고 여러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이 여파 등으로 2020년 10월 제명됐다. 당시엔 곧 복귀했지만 지난달 24일 재차 제명됐다. 일부 코빈파는 제명을 주도한 스타머 대표에게 적개심을 보인다.
14년 만의 집권 기회를 잡았지만 경제는 어렵고 당내외 반대 세력 또한 상존하는 상황. 스타머 대표가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까. 그는 최근 “집권 시 핵잠수함 추가 도입” 같은 ‘우클릭’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가 성장과 분배를 결합한 ‘제3의 길’로 장기집권한 블레어 전 총리에 필적할 지도력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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