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주영]‘천안함 모자’와 ‘격노설’… 윤 대통령의 진짜 모습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5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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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 정치부 기자
전주영 정치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종종 산책할 때 ‘ROK NAVY/PCC-772’라고 적힌 천안함 모자를 썼다. 2021년 6월 대선 출마 선언 전 서초동에서, 당선 후 해외 순방지인 프랑스 파리, 리투아니아 빌뉴스, 영국 런던에서 이 천안함 모자를 썼다. 지난해 여름 휴가 때도 그는 천안함 모자와 티셔츠 차림으로 진해 해군기지에서 장병들을 격려했다.

국가유공자 예우의 격을 높이고 군인, 경찰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제복 공무원을 위한 예우 강화는 윤 대통령이 줄곧 강조한 현 정부의 정체성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 세력 성향에 따라 부침을 겪던 국가보훈처를 지난해 국가보훈부로 격상시켰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 ‘군인 월급 200만 원’을 지키기 위해 실제 군인 월급을 대폭 올렸다. 지난해 현충일에는 “나라의 안위,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군인, 경찰, 소방관 등 제복 입은 영웅들을 끝까지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당선 전이나 후나 변함없는 일관된 대통령의 모습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요즘엔 천안함 모자를 눌러쓰며 보훈 행보를 강조하던 윤 대통령의 모습이 약화된 듯하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과 그를 둘러싼 이른바 ‘VIP 격노설’이 부각되다 보니 제복 공무원을 예우하는 윤 대통령의 PI(President Identity)가 상대적으로 흐려지는 양상이다.

채 상병은 지난해 7월 19일 경북 예천군의 폭우 피해 복구를 위해 대민지원을 하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가유공자로서 최고 예우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사건을 조사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수사 외압을 주장하고 있다.

수사 외압 논란의 핵심인 윤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통화 날짜는 지난해 8월 2, 8일. 윤 대통령의 여름휴가 기간이다. 윤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 참모들에게 “(사실상) 잼버리 휴가”라며 허탈하게 웃었다고 한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부실 준비 논란을 빚어 파행함에 따라 윤 대통령은 군인, 경찰력을 지원받아서라도 사태를 수습하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휴가지인 저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잼버리 현장에 한 번 더 방문하려 했지만 열이 39도까지 올라 결국 무산됐다고 한다. 이에 참모들은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를 두고 “군의 잼버리 대민지원 통화”라고도 했다.

대통령실은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입을 닫고 있다. 그사이 각종 보도들이 나와 의혹은 더 커졌다. 이를 답답하게 지켜본 여권 고위 관계자는 “법조인이 아닌 박 대령이 수사 권한 없이 수사 외압을 말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며 “애초 박 대령이 피의자를 누구로 하든 경찰에 귀속 효과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오히려 사단장부터 싹 다 처벌하는 게 대통령 입장에선 더 쉬웠을 것”이라 했다. 실제로 형사책임을 질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률가 출신으로서 윤 대통령의 판단은 일관됐을 것이라는 뜻이다.

공수처 수사 결과가 나오면 윤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박 대령의 조사 내용에 대한 윤 대통령의 당시 판단, 이 전 장관과의 통화 내용을 국민 앞에 솔직히 얘기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제복 공무원을 끝까지 기억하고 예우하는 윤 대통령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전주영 정치부 기자 aimhigh@donga.com
#천안함 모자#격노설#수사 외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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