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인 여가부장관 100일 넘도록 ‘방치’
정부내 소통 부족으로 정책 혼선 계속돼
국정 제대로 하라는 총선 경고장 새겨야
4월 총선 패배로 윤석열 정부의 기세가 꺾여 국정의 동력을 잃는 것은 유권자의 참뜻이 아닐 것이다. 정부에 경고장을 날렸던 총선 민의는 오히려 국정을 더 단단히 잘해 달라는 것이었다. 행정학의 창시자인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행정은 정치와 다르다”고 한 말 역시 정치나 선거에 흔들림 없는 일관된 행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일관된 행정이 무너지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단적으로 선거 이후 여러 정치 현상에 가려져 있지만 지금 정부에는 국무위원 1명이 대리로 직무 수행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올 2월 여성가족부 장관이 물러난 뒤 지금까지 100일 넘도록 장관직은 비어 있다. 차관이 장관 대행으로 국무회의도 참석하지만, 대통령은 후임자를 지명할 뜻을 내비친 적이 없다. 대선 때 ‘여가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세웠던 탓에 6월 중에 있을 부분 개각에 여가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여가부는 젠더 논쟁이 한창인 지금, 정부의 누구도 그 운명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며칠 전 내놓은 ‘장관 임명’ 권고가 멋쩍을 뿐이다. 이런 과정은 윤 대통령이 책상머리에 두고 자주 다짐한다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말과 부합하지 않는다. 장관 장기 부재라는 난맥을 보면서 임기 3년 동안 참고할 국정운영 원칙을 되짚어 보기를 바란다.
첫째, 국정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라. 국민들이 지금 가장 절박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용산 대통령실은 갖고 있어야 하고, 그것부터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둘째, 국정의 컨트롤타워를 분명히 하라. 대통령비서실은 긴급현안체계를 갖추고 중요한 일들을 수평적 수직적으로 점검하되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재개했고, 국정 브리핑도 시작했다. 진일보한 조치라고 평가하고 싶다. 기왕에 할 거면 민감한 정무 현안에 대해서도 더 직접적으로 대응했으면 한다. 아울러 3일 만에 철회했던 ‘해외 직구 차단’ 논란처럼 정부 내부의 소통 부재로 생기는 혼선은 용납해선 안 된다. 대통령비서실은 각 정부 부처의 정책 대응력을 존중하되 국정 현안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앞으로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세운다면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어야 한다.
셋째, 국정의 중심 가치를 언제나 기억하라.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시장이 중심이 되는 역동적 경제”를 이룩하겠다고 약속했고 국민들은 신임(信任)했다. 5년간의 수권(授權)은 그야말로 신성한 약속이다.
넷째, 그럼에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국민이 행복한 사회, 노동의 가치, 청년의 꿈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플랫폼 역시 섬세하게 챙겨야 한다. 높은 차원의 가치인 ‘품(品)’을 굳건히 하면서 섬세한 기술적인 정교함에 해당하는 ‘질(質)’을 잘 챙겨야 한다. 공직사회가 느슨해졌다면 적절한 신상필벌로 영을 세워야 한다.
다섯째, 정책학의 대가 예헤츠켈 드로어는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정 전체를 조망하면서 위험 vs 안정, 집중 vs 분산, 긴급 vs 중요 등으로 나누어 ‘메타 정책분석(정책 결정에 대한 정책 결정)’을 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보다 큰 관점에서 줄기와 맥락을 잡고 무엇이 더 긴급하고 집중해야 하는지를 먼저 파악하라는 것이다. 정책에는 좀 더 높은 차원과 수준의 사회적 가치를 보호하고 고양하는 정책이 있는 반면, 낮은 기술적 차원에서 챙겨야 할 집행적인 쟁점들도 있다.
여섯째, 야당과 윈윈 체제를 구축하라. 가슴을 열고 소통하되, 절대로 끌려가거나 야합하지 말라. 언제나 국정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다. 지난 2년간 국정을 운영한 윤석열 정부의 법안 반영률은 40.2%이다. 국민들은 모두 지켜보고 있다. 여야 정치권 모두 심판의 대상이다. 민생과 안보 등 국민 생활만 바라보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라.
개인도 살다 보면 다양한 시련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국정이랴. 관료제의 아버지 막스 베버는 “관료제는 법적 안정성과 함께 엄격한 책무성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위험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국정의 중심 원칙과 가치를 잊지 말라. 민주주의와 소통 역시 잊어선 안 되겠지만, 행정과 정책의 중심 가치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행정이 국정의 중심에 우뚝 설 때 국민은 다시 박수와 지지를 보낼 것이며, 국정 난맥도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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