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방 거사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267〉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6일 22시 48분


전시(展試) 합격자 명단에서 어쩌다 장원의 기대가 사라졌네./성군의 시대가 잠시 현명한 인재를 버렸으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좋은 기회를 놓친 마당에 내 어찌 맘껏 하지 못하랴. 이해득실 따져 봐야 아무 소용 없지./재능 넘치는 사인(詞人), 나야말로 벼슬 없는 공경대부라네.(1절)

기녀들의 거리, 저들의 방에는 어렴풋한 채색 그림의 병풍./운 좋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들 수도 있으리./이렇듯 기녀들과 어울리면서 풍류를 즐기는 것, 내 평생의 큰 기쁨이지./젊음은 한순간일 뿐, 헛된 명성을 차라리 느긋한 음주, 나지막한 노랫가락과 맞바꾸리.(2절)

(黃金榜上, 偶失龍頭望. 明代暫遺賢, 如何向. 未遂風雲便, 爭不恣狂蕩. 何須論得喪. 才子詞人, 自是白衣卿相.(上片) 煙花巷陌, 依約丹靑屛障. 幸有意中人, 堪尋訪. 且恁偎紅倚翠, 風流事, 平生暢. 靑春都一餉. 忍把浮名, 換了淺斟低唱.(下片))

―‘학충천(鶴沖天)’ 유영(柳永·984∼1053년경)





과거에 낙방한 선비의 오기와 자포자기가 엇섞인 노래. 어전에서 치른 전시에서 낙방하고도 ‘어쩌다’ 명단에서 누락되었고, 시대가 ‘잠시’ 인재를 버렸노라 여유를 부린다. 하나 시인은 결국 마음을 바꾼다. 헛된 명성에 안달복달하느니 음주가무나 즐기자. 그런 그를 황제도 끝내 외면해서 ‘헛된 명성이라면서 왜 그리 과거에 매달리나’라고 질타했다. 30여 년에 걸쳐 낙방을 반복하면서도 뻔질나게 기방을 들락거렸던 시인. ‘우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유영의 사(詞)를 읊조렸다’라는 명성 하나는 남아 있다. ‘학충천’은 곡조명.
#낙방#거사#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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