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공부하시나요?” 이 질문을 가끔 받는다. 당연히 아니다. 집에 컴퓨터가 있지만 전원을 누른 지 오래되었다. TV도 없다. 집에 가면 휴대전화도 멀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 태엽을 풀 듯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며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즐긴다. 동네 산책을 하고 책을 읽는다든지 신문들을 보는 게 낙이다. 배달된 신문을 다 읽지 못하면 모아놨다 주말에 본다. 주말 아침 밀린 신문을 보면서 느린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학교에서의 삶은 반대다. 출근하면 3대의 컴퓨터에 전원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종일 컴퓨터와 씨름한다. 컴퓨터를 이용해 실험 데이터를 처리하고, 다시 이론을 적용해 데이터를 확인하고 논문으로 정리한다. 이 과정은 컴퓨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컴퓨터로 시작해 컴퓨터로 끝나는 하루다. 이 과정을 집에서까지 연장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박사 과정 때는 모든 데이터를 실험 노트에 기록했다. 시료도 직접 필름 카메라로 찍어 현상하고 그래프도 직접 까만 먹물 잉크로 그렸다. 모든 데이터는 노트 속에 있었다. 데이터가 정리되면 이론을 만들고 타자기로 논문을 작성해 우체국에서 국제우편으로 논문을 투고했다. 심사를 거친 우편물이 오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불과 25년 전의 일이다.
이번 학기엔 프로젝트 수업인 캡스톤 디자인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얼굴의 표정 변화를 카메라로 인식해 무선으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적 고비가 존재한다. 직접 컴퓨터 코딩을 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언어 코드를 가진 기기를 원활하게 연결해야 한다. 어려운 순간 학생들은 오픈AI가 개발한 인공지능 챗GPT를 활용한다. 마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한 친구처럼. 전기만 있으면 똑똑한 친구를 옆에 둘 수 있는 인공지능 세상이 되었다.
1969년 컴퓨터를 이용해 물리학 이론을 최초로 계산한 네덜란드 물리학자가 있다. 헤라르뒤스 엇호프트와 그의 스승 마르티뉘스 펠트만이다. 그들은 195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양전닝과 리정다오 박사의 양-밀스 이론을 컴퓨터를 이용해 계산했다. 양-밀스 이론은 핵에 존재하는 핵력을 최초로 밝혀낸 이론이다.
엇호프트와 펠트만이 당시 사용한 컴퓨터는 원시적인 기계 수준의 컴퓨터였다. 단순 계산을 컴퓨터에 시킨 것이다. 지금의 컴퓨터라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계산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전기자기학 이론을 일반화해서 핵력을 설명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컴퓨터를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머릿속 이론은 종이 위 연필로, 구차한 계산은 컴퓨터에 시킨 것이다. 이 공로로 1999년 엇호프트와 펠트만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인공지능은 문제 해결 도구로써 활용할 수 있는 약인공지능(Weak AI)과 인간처럼 실제로 사고할 수 있는 강인공지능(Strong A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 있다. 지금은 약인공지능의 단계이지만 앞으로 25년 정도가 지난다면 어떤 인공지능의 세상이 올까?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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