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사람이 제가 사려던 빵을 다 사가서 너무 러키(lucky·운이 좋은)하게 제가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야!”
스페인의 한 빵집. 걸그룹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이 자신이 사려던 빵이 품절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불평하는 대신 카메라를 보며 한 말이다. 장원영 씨에겐 미안하지만, 이 영상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이랬다. “뭐라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신간 제목이 유행어처럼 떠돈 2010년에 20대 후반을 보낸 세대여서일까. 빵이 다 팔려 바로 받을 수 없게 됐을 때 불평하기보다 ‘따뜻한 빵을 받게 됐으니 행운’이라 받아들이는 장원영의 초긍정적 태도가 솔직히 꽤 낯설게 느껴졌다.
반면 Z세대는 열광했다. 짜증이 날 법한 상황이지만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긍정적 사고방식은 ‘원영적 사고’란 신조어를 낳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장원영의 말투를 따라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은 빠르게 퍼졌고, 조회수도 수백만 회에 이른다. 심지어 장원영의 말투를 이용해 현재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풀이해 주는 ‘원영적 사고 챗GPT’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흙수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 등 부정적 신조어가 난무했던 것과는 180도 다른 판도다.
Z세대는 왜 원영적 사고에 열광할까. 심리학자, 사회학자 등 전문가들과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분석들이 나왔다. 먼저 원영적 사고 유행 이면에는 학업, 취업 등 어려운 현실에 찌든 젊은 층이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함으로써 숨구멍을 찾으려는 심리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여기엔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Z세대의 특징도 역할을 했다. 어려운 상황을 불평하기보단 긍정적 ‘전환’으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원영적 사고를 적극 활용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원영적 사고를 ‘긍정 심리학’의 맥락에서 이해하기도 했다. 실제로 긍정적 사고를 할 경우 부교감신경 등에 영향을 미쳐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적 통증까지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전화위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원영적 사고는 젊은 세대의 사회적 관계 및 회복탄력성 향상 등에 영향을 줌으로써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현상이란 의견도 있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나친 낙관성이 현실을 회피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심리학자 어니 J 젤린스키가 쓴 책 ‘느리게 사는 즐거움’(2008년)에는 ‘우리는 96%의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주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 22%는 사소한 것, 4%는 바꿀 수 없는 사안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 다독이던 20대 시절로 돌아가 원영적 사고를 일상화했다면 삶의 중심이 더 단단해졌을까. 긍정적 사고방식을 트렌드로 받아들이는 Z세대가 한편으론 부럽고, 그들이 그려 나갈 새로운 미래 역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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