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日 사도광산, ‘강제노역 흑역사’ 지우면 세계유산 가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7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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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 대해 유네스코 자문기구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보류’를 권고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등재 신청을 하면서 강제동원의 흑역사를 감추려고 대상 기간을 19세기까지로 제한하는 ‘꼼수’를 부렸는데 자문기구는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전시 전략을 세우고 시설 설비를 갖추라”고 권고하면서 사실상 20세기 강제노역사까지 반영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1601년 발굴돼 1989년까지 운영된 일본 최대 사도광산이 에도 막부 시대 유산이라고 주장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겐 죽음의 노역장이었다. 일본 정부 문서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무렵 최소 1141명의 조선인이 이곳에서 전쟁 물자를 캤다. 한국 정부가 사도광산 강제징용 피해자로 판정한 148명 중 73명이 진폐증과 폐질환 등의 후유증을 앓았고, 사망자도 일본 전 지역 조선인 노무자 사망률보다 6배 높았다. 사도광산의 대부분 유적은 태평양전쟁과 관계된 시설물들이다. 이런 역사를 뺀 반쪽짜리 유적이 어떻게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할 만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겠나.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등재 보류 권고 결정에는 일본이 2015년 또 다른 강제동원 현장인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했던 약속을 어긴 전력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일본은 당시 하시마 탄광을 메이지 시대 유산으로 등재하면서도 조선인 강제동원을 인정하며 피해자를 기리는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도쿄에 만든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장에는 ‘학대나 차별은 없었다’는 증언 위주로 소개해 유네스코가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전체 역사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추가로 권고한 상태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다음 달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21개 위원국의 표결로 결정된다. 한일 양국이 합의된 문안을 제시하면 위원국들이 결의하는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시마 탄광의 역사 왜곡이 사도광산에서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일본이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권고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담보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기억과 반성 없이는 우호도 없다.
#일제강점기#조선인 강제노역#세계유산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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