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뉴스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기사가 있다. 단어만 들어도 귀가 쫑긋 선다. 퇴직자들에게 왠지 모를 불안감을 안겨주는 그것, 바로 연금개혁이다.
얼마 전 옛 직장 선후배들과 저녁 모임을 가졌다. 지난해 암 수술을 받으셨던 상사분의 건강 회복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상사는 병마와 싸웠던 그간의 날들을 풀어내셨다. 건강은 미리 챙겨야 한다는 당부도 여러 번 하셨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얘기를 꺼내셨다. 몇 년 전부터 앞당겨 받고 있는 연금 덕에 입원 중에도 큰 시름을 덜 수 있었다고 하셨다.
“다행이네요.” 듣고 있던 김 부장이 자신이 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 부장은 우리 중 가장 먼저 회사를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평상시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는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현재는 퇴직 후 두 번째로 들어간 직장에 다니는 중이었다.
김 부장은 최근 들어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이 가진 국가자격증만 해도 대여섯 가지가 넘었다. 나중에 다 쓸모가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짬짬이 하고 있는 생활 속 아르바이트 정보도 알려주었다. 데이터 라벨링이며, 앱을 통한 음식배달 등 나도 처음 듣는 일들이 많았다.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김 부장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는 재취업과 부업을 통해 부족한 소득을 조금씩 메워가고 있었다.
잠시 분위기가 조용해지려는 찰라, 강 이사가 입을 열었다. 강 이사는 퇴직 후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며 고정비용을 줄이기로 아내와 얘기를 마쳤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 본인이 살던 집을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관리비도 부담이고 더는 서울에 살 이유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집 규모를 축소해 마련한 돈으로 수익형 부동산을 알아볼 예정이라면서, 월세를 받게 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거라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노후생활비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김 부장과 강 이사, 둘 다 퇴직할 시점에 경제적으로 충분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직장인 시절에도 아이들 학원비에 부모님 용돈까지 대느라 늘 빠듯하게 살았다. 젊은 날 결코 허투루 살지 않았음에도 노후가 걱정되는 그들의 모습은 대한민국 대다수 퇴직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까지의 시간을 버는 것. 오늘을 사는 이 시대 대한민국 퇴직자들의 당면 과제였다.
통계를 보면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50대의 67%가 국민연금을 가장 큰 준비 방법으로 꼽았을 만큼 50대의 국민연금 의존도는 상당히 크다. 전 연령대를 비교해 보았을 때 제일 높은 수치다. 평균 퇴직 나이가 49.3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50대 퇴직자의 상황도 유사하리라 짐작된다. 퇴직 후 수입이 적어진 상태에서 국민연금이 마지막 보루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양질의 일자리는 찾기 힘든 데 반해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넘쳐나는 암울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모임에 다녀온 이후 나는 건강 관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활동하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올 초 컨디션 난조로 수차례 어려움을 겪었고 과도한 병원비를 사용한 뒤에 얻은 교훈이었다. 예상치 못한 의료비 지출은 가계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그를 통해 깨달았다. 퇴직 후에 소득을 창출하기가 여의치 않다면 불필요한 씀씀이를 없애는 것도 효과적인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걷기다. 금전 부담 없이 어디서나 할 수 있어 퇴직자인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많게는 하루 2만 보를 꾸준히 걸으니 몸에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이전에 비해 깊은 잠을 자게 되었고 불필요한 공상도 사라져 머리가 맑아졌다. 내친김에 근력 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근테크(근육+재테크)라는 말처럼 이렇게 만들어진 나의 근육은 의료비를 줄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보다 생산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직장을 떠나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안정된 소득이 없는 기간을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라고들 한다. 다시 표현하면 소득절벽이라는 뜻이다. 이 구간을 지나기 위해 많은 퇴직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각기 처지가 다르기에 ‘이것’만 하면 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해법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측면으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퇴직자는 분명 자신만의 답을 찾을 것이다. 부디 퇴직자들이 그 여정 가운데 지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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