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매일매일 재촉한다… 하루 치 세상을 펼쳐보라고[2030세상/배윤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9일 2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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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스로 좋아서 혹은 과제여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어야만 했던 학생 시절이 지난 이후부터, 거기다가 하루 종일 현장에서 도배를 하며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 이후부터는 더더욱 책을 비롯한 글 읽을 일이 없어졌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그 대신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짧은 영상을 접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독해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짧은 글도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번 다시 읽는 일이 잦아졌고 긴 글에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도배 현장에서 일에 관련된 언어 위주로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용하는 어휘의 폭이 줄어들었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가 제때 떠오르지 않아 멈칫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책을 읽더라도 좋아하는 장르나 주제에 한정되었고, 그마저도 조금씩 끊어 읽는 탓에 한 권을 완독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리고 관심 없는 주제는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읽지도 않고 읽더라도 지나치게 편협하게 읽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사설을 모아 스크랩한 후 내용 요약에 내 의견을 덧붙여 논술시험에 대비했던 입시생 시절이 떠올라, ‘읽기 훈련의 근본’이라고 하는 종이 신문을 읽기로 결심했다. 그때그때 사보지 않고 1년 구독을 신청했는데 디지털 뉴스가 대세로 바뀐 지 오래라는 점을 생각하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문 구독의 효과는 예상보다 컸다. 매일 아침 문 앞에 종이 신문 한 부가 놓이고 그날 받은 신문을 다 읽지 못해도 신문사와 배달원은 기다려 주지 않고 다음 날 새 신문을 선물한다. 책을 사놓고 읽지 않은 채 놔두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압박감이다. 책은 나를 재촉하지 않지만 신문은 매일매일 나를 재촉한다. 부피도 작지 않아서 일주일만 지나도 꽤 많은 신문이 쌓인다. 어쩔 수 없이 숙제처럼 신문을 펼쳐보게 된다.

관심 있는 주제와 좋아하는 장르의 글만 읽다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으려니 쉽지 않았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문체와 어휘들로 구성된 딱딱한 글을 읽어 내려가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매일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유사한 주제들을 계속 읽으려니 귀찮기까지 했다. 그러나 신문을 읽다 보니 필연적으로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게 된다. 국가적으로는 어떤 일들이 있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는지, 여러 영역에서 사람들이 각자 어떤 의견을 가지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한 번에 접할 수 있다. 기사와 다른 의견은 없는지 궁금해 추가적으로 검색해 보기도 한다.

사회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 멈추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일은 역시나 번거롭고 귀찮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규칙 안에서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해나가는 일의 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글 읽는 습관 정도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익숙해졌으면 한다. 여전히 신문을 꼼꼼하게 읽는 것은 어려워서 제목만 훑고 지나가거나 포기하는 날도 있지만, 신문 읽기가 습관이 되어 아침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신문을 읽는 상상 속 멋진 어른이 되어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신문을 펼친다.
#신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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