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슈베르트의 송어 5중주곡을 CD 플레이어에 걸어놓고 헤드폰을 썼다. 4악장에서 유명한 가곡 ‘송어’의 주제가 흐르고 나서 첫 변주로 옮겨가기 직전,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추는 부분에서 작지만 귀를 붙드는 또록또록 소리가 들렸다. “…뭘까?”
헤드폰을 벗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헤드폰을 쓰고 다시 들어보았다. 어라, 그것은 연주회장 마이크에 잡힌 귀뚜라미 소리였다.
이 음반은 1967년 미국 말버러 음악축제에서 녹음됐다. 말버러 음악축제는 1951년부터 미국 버몬트주의 숲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마을 말버러에서 매년 7∼8월에 개최된다. 개방된 장소에서 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에 관객들은 풀밭에 앉아 기분 좋은 여름 바람을 느끼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앞서 얘기한 ‘송어’ 5중주곡은 루돌프 제르킨이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리니스트 하이메 라레도, 첼리스트 레슬리 파르나스 등 명인들이 연주에 참여했다. 귀뚜라미들도 아름다운 화음에 동참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자연의 공간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강원 평창군 방림면 계촌마을에서는 올해 10회를 맞은 계촌클래식축제가 열렸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함께 만드는 이 축제도 말버러 음악축제처럼 열린 공간에서 달큼한 여름 저녁의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선율을 만날 수 있다. 올해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이진상, 조성진, 지휘자 김선욱,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이 함께했다.
자연 속이라고 말하기는 어색하지만 서울 한복판의 열린 공간에서 오페라를 감상할 수도 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11, 12일 오후 7시 반 광화문광장에서 공연한다. 공개모집으로 선발한 123명의 시민예술단이 합창단으로 참여한다. 사전 예약 관람 좌석은 매진됐지만 이 시간 광화문광장 부근을 거닌다면 이 오페라의 유명한 간주곡과 합창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등의 명선율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강원 대관령 일대에서 열리는 평창대관령음악제도 7월 24일 개막을 앞두고 준비에 한창이다. 이 음악제의 주무대인 알펜시아 리조트 ‘뮤직텐트’는 개방된 공간이 아니지만 텐트 형태의 구조물이어서 때로는 말버러 음악축제에서와 같은 귀뚜라미 소리가 정적을 깨고 들어온다.
올해 음악제 주제는 ‘루트비히!’다. 올해 초연 200주년을 맞는 교향곡 9번 ‘합창’을 비롯해 음악사의 혁명아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작품들을 대거 조명할 예정이다. ‘프랑스의 강원도’라 할 만한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오베르뉴론알프 국립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토마스 체에트마이어, 아드리앙 페뤼숑, 첼리스트 페레니 미클로시, 지휘자 이승원, 바이올린 이지윤, 바리톤 김기훈, 소프라노 임선혜, 피아니스트 박재홍 등이 참여한다.
유럽으로 눈을 옮겨보면 스위스의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고지대 산간 휴양지에서 1994년부터 열리는 음악축제다. 말버러 음악축제나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탱글우드 페스티벌처럼 풀밭에 자유롭게 앉아 저녁 소풍 기분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지만 출연자들의 면면은 초일류급이다.
올해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선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등 한국인 연주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솔로 리사이틀과 실내악 무대, 오케스트라 협연을 망라한 임윤찬의 일정이 눈에 띈다. 임윤찬은 7월 20일 차이콥스키 ‘사계’,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등을 연주하는 리사이틀을 열고 25일 실내악 연주회에서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과 함께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4중주곡 2번 연주에 참여한다. 26일에는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하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한다.
김봄소리는 7월 26일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 등과 함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피아노 4중주를 연주한다. 28일에는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를 위한 소품’ 연주에 참여한다. 이어 29일에는 피아니스트 쥘리앵 캉탱과 듀오 콘서트를 연다. 드뷔시, 시마노프스키의 소나타와 포레의 소나타 1번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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