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로 번역되는 플라톤의 대화편 원래 제목은 Politeia이다. 훗날 사람들이 이 책에 붙인 부제가 ‘올바름에 관하여’(정의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 논쟁의 핵심은 정의란 과연 ‘강자의 편익’을 위한 것인가, ‘약자의 편익’을 위한 것인가이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가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법으로 공표하면 약자는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정의가 통치술의 대상인 피지배자의 편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반론을 편다.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통치자가 자진해서 통치하지 않으려고 하는 점에 주목한다. 참된 통치자는 ‘잘 사는 것’을 위해 돈이나 명예를 삶의 가치로 삼지 않는다. 모든 기술(techne)이나 다스림(arche)도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먼저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스림을 받는 쪽의 이득이 먼저 고려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의술을 예로 든다. 수술은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기술이지 의사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돈과 명예는 나중에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명의란 이처럼 자신의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를 돌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훌륭한 의사는 약자인 환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지 강자인 자신의 수입을 먼저 따지지 않는다.
통치도 마찬가지다. 모든 다스림은 다스리는 사람인 강자의 이익보다는 다스림을 받는 약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포함해 훌륭한 통치자의 자격을 갖추어도 자신이 통치에 나서지 않는다면 통치기술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 마치 명의가 휴진하는 것과 같다.
참된 통치자가 통치하게 하려면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보상이다. 그러나 돈과 명성으로는 부족하다. 훌륭한 사람은 통치의 대가로 보상을 요구하는 ‘도둑’이 되기를 거부하며 또한 이름난 자리를 원하지도 않는다.
훌륭한 통치자가 정치하게 하려면 반드시 수치심, 벌과 같은 ‘강제’가 필요하다. 통치하지 않게 되면 받게 되는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일’이다. 그러한 ‘벌’이 두렵기에 통치를 맡게 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닌데 ‘자진해서 통치하려고 나서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훌륭한 사람이 통치에 임하는 것은 국가에 좋은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안락함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하기 때문이다. 마땅한 사람이 없어 자신이 맡게 되는 경우다. 소크라테스는 그 당시 상황을 비꼬면서 훌륭한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서로 통치를 맡지 않으려는 것이 싸움거리’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올바름을 실현하는 ‘참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자신의 탁월한 통치술을 발휘할 때 나에게 최선인 것이 아닌, 다스림을 받는 쪽의 최선을 먼저 생각한다. 정치를 통해 남이 잘됨으로써 자신도 잘되는 지혜를 발휘하는 훌륭한 통치자는 탁월함, 겸손 그리고 상생의 정신을 함께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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