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경남 밀양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10년 뒤 개봉한 영화 ‘한공주’의 주인공 공주가 극 초반부 나지막이 내뱉는 대사다. 공주는 성폭행 피해자다. 이 대사는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 학부모들에게 둘러싸여 전학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나온다. 실제 사건에서도 가해자 측이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집단 성폭행 하나로도 천인공노할 사건인데, ‘2차 가해’까지 자행된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뇌리에서 이 사건을 지우지 않고 분노하는 이유다.
그 분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적 제재’의 근원이 됐다. 발단은 한 유튜버가 자신의 채널에 이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과 직장 등을 공개하면서다. 그는 “고소 당할까 봐 벌벌 떨지 않고 할 말 전부 다 하는 채널”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들의 신상 공개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대중은 환호했다. 이후 이 유튜버가 가해자와 그 주변 인물이라고 지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냥’이 뒤따랐다.
과연 정의는 뒤늦게 실현됐을까. 현재까지 나타난 결과만 봐서는 오히려 사적 제재의 한계가 더 눈에 띈다. 국가의 사법체계처럼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무고한 피해자를 낳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가해자의 여자친구라며 네일숍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목된 A 씨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게 리뷰에 쏟아진 악플 폭탄에 견디다 못한 A 씨는 경찰에 진정을 넣었다.
더군다나 피해자 측의 동의를 받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이 나오며 해당 유튜버의 진의는 더욱 의심받고 있다.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달 5일과 7일 잇달아 보도자료를 통해 이처럼 지적했다. 해당 유튜버는 “피해자 측과 사전에 조율한 것은 맞다”면서도 신상 공개 영상을 내려달라는 피해자 측 요청을 일부 묵살했다는 점을 인정한 상태다.
사람들의 분노가 뒤늦은 정의를 실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유튜버에게 돈을 벌어다준 것만은 분명하다. 유튜브 후원금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적게는 1만 원, 많게는 10만 원짜리도 눈에 띈다. 분노가 돈이 된 것이다.
그 사이 같은 사건을 다루며 피해자의 의사는 별달리 고려하지 않는 유튜버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사건 피해 상황이 적나라하게 담긴 판결문이 공개돼 온라인에 떠돌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또 다른 유튜버는 “혹시나 피해자분이 이 영상을 보신다면 시청을 하지 말아 달라. 공개될 내용에는 피해자가 감히 상상도 하기 싫은 그날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하며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올렸다. 가해자와 싸우겠다며 계좌번호를 공개하는 유튜버도 있다.
영화 속에서 공주를 둘러싸고 전학을 강요했던 가해자 학부모들의 2차 가해가 이젠 유튜버들로 바뀌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다시 개봉한다면 그땐 가해자가 성폭행 관련 인물들뿐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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